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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영근 신부님_2024년 5월 4일 부활 제5주간 토요일_최원석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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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5-04 조회수103 추천수3 반대(0) 신고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 16,1-10 

 

그 무렵 

1 바오로는 데르베를 거쳐 리스트라에 당도하였다.
그곳에 티모테오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는 신자가 된 유다 여자와 그리스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서,
2 리스트라와 이코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고 있었다.
3 바오로는 티모테오와 동행하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그 고장에 사는 유다인들을 생각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베풀었다.
그의 아버지가 그리스인이라는 것을 그들이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4 바오로 일행은 여러 고을을 두루 다니며,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이 정한 규정들을 신자들에게 전해 주며 지키게 하였다.
5 그리하여 그곳 교회들은 믿음이 굳건해지고 신자들의 수도 나날이 늘어 갔다.
6 성령께서 아시아에 말씀을 전하는 것을 막으셨으므로, 그들은 프리기아와 갈라티아 지방을 가로질러 갔다.
7 그리고 미시아에 이르러 비티니아로 가려고 하였지만, 예수님의 영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
8 그리하여 미시아를 지나 트로아스로 내려갔다.
9 그런데 어느 날 밤 바오로가 환시를 보았다.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오로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는 것이었다.
10 바오로가 그 환시를 보고 난 뒤,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떠날 방도를 찾았다.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15,18-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하였다는 것을 알아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
20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
21 그러나 그들은 내 이름 때문에 너희에게 그 모든 일을 저지를 것이다.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늘 복음은 ‘제자들과 세상의 관계’에서 제자들이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박해를 당하게 될 것에 대한 예고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한편으로는 제자들의 ‘신원’과 ‘사명’으로부터,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 사람들의 몰이해로부터 오게 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리하여 결국 세상과 제자들의 관계에서 제자들의 사명 역시 '사랑'임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박해를 당하는 이유를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세상에서 택한 사람들이기 때문'(15,19)이라고 밝혀줍니다. 

이 말씀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와 한 계약 체결의 약속 내용, 곧 “너희를 나의 소유가 되게 하리라. ...거룩한 민족으로 뽑았다.”(탈출 19,5-6)라는 말씀을 떠올려줍니다.

 

그러니 이는 ‘이미’ 우리 안에 ‘성취된 계약’, ‘성취된 말씀’입니다.

이는 두 가지 사실이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주님께 ‘속한다’는 것이요, 또 하나는 주님께 ‘선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제자들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2세기의 무명 교부의 작품인 <디오그네투스에게>서 말해주듯이, '세상의 영혼'으로서의 삶입니다.

곧 ‘세상 안에 살되 세상에 속하지 않는 사람’인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당하는 이유를 “내 이름 때문”(15, 21), 곧 '내 제자라 해서'라는 사실을 밝혀줍니다.

그리고 '그들은(세상은) 나를 보내신 분을 모른다.'(15,21)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비록 제자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해도’, 혹은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박해를 받는다 해도’, 혹은 ‘세상이 아버지를 모르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제자들도 똑같이 세상을 그렇게 할 수만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은 그들만의 구원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구원을 위한 도구로 삼기 위함이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은 것도 그들의 구원만이 아니라 만민의 구원을 위한 도구로 삼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은 세상이 아무리 제자들을 미워하고 박해한다 하더라도, 오직 당신을 보내신 분인 아버지께만 믿음을 두셨던 주님이요 스승이신 예수님을 따라서 믿음으로 복음을 선포하라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 예수님께 속해 있다면, 미움과 박해는 당연한 것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인의 특권에 해당할 것입니다.

 

이 특권에 대해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하는 특권을, 곧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하여 고난까지 겪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필리피 1,29)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명과 함께 고난의 특권도 부여받았습니다. 

한스 큉은 말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고난을 없애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사랑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오, 나의 주 나의 전부 나의 임자시여!

나를 독차지하신 나의 지배자 나의 정복자시여,

바로 지금 저를 점령하소서.

저는 본시 당신 것이옵니다.

저는 당신의 것, 당신의 소유이오니, 당신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이옵니다.

당신의 택함, 당신의 보냄을 따라 감히 당신의 뜻을 따르겠사오니, 제가 공동체와 형제들 안에 머물게 하소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혹 내 형제가 나를 미워하고 박해한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사랑 안에 머물게 하소서.

당신 말씀을 사는 말씀의 봉사자가 되어 주인님이신 당신을 찬미하며 감사하게 하소서.

오 감사하나이다.

나의 주, 나의 임자시여!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요한 15,19)

주님!

세상에 속하지 않기에, 세상의 사랑을 구하지 않게 하소서!

당신께 속하니, 당신의 사랑에 목마르게 하소서!

고난을 겪는 특권을 받았으니, 그 속에서 당신을 만나 뵙게 하소서!

그 어떤 미움과 배척에서도 사랑을 배우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어려서나 지금이나 저에는 항상 붙어 다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왕따입니다. 공부를 잘하던 못하던 관계없이 왕따라는 것은 똑 같습니다. 어려서는 공부를 못하고 키는 작고 자신의 의견을 말 못하고 모든 부분에서 동등의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기에는 좀 부족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같이 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려서의 부족함이 체워졌는데 그런데 노상 혼자입니다. 왜?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저의 중심에 있기에 그렇습니다. 정의와 사랑 중에서 저는 정의가 우선한 사람이었습니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바로 이야기를 해야 했고 주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로 부터 기피의 대상인것입니다. 어느날 문득 저를 돌아보면서 나의 행동이 진정 진리인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공동체 생활을 하기로 했고 수도회 재속회를 하기로 했고 성당에서는 레지오를 하기로 했습니다. 많은 일들이 있겠지요. 그러나 지금 이곳의 지면에 신부님들의 묵상글들이 있는데 그분들의 공통점은 세상 속에서 사시면서 말씀 나눔을 같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사시면서 같이 그 속에서 나눔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저의 영원한 스승님과 같은 고 박종인 신부님도 공동체 생활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마지막 미사에서 원장 신부님의 강론이 아직도 기억이 남는 것은 신부님과 수도회 식구들이 김장 김치를 담기 위해서 모여서 오손 도손 같이 했던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보면서 우리 신앙인은 사랑이 우선해야 하고 그 속에서 정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저도 어찌 보면 정의와 사랑, 같이 했어야 했는데 한쪽만 너무 치우친 것이 지금의 왕따를 자초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은 세상 사람들로 부터 미움을 산다는 것입니다. 저같이 정의를 위해서 몸을 바쳐서 그런 미움을 사는 것일까? 그것보다는 주님은 영적인 분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입니다. 세상은 육적인 사람들로 모여 있는 곳입니다. 지난번에 동네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과 대화에서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 왜? 어찌 부활을 믿으라는 것인가? 어찌 모든 사람은 죽으면 끝인데 그 끝을 부인하고 부활을 믿으라는 것인가? 이것으로 인해서 주님은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것이 끝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 하셨습니다. 그것을 증언하고 그런 영적인 삶을 살으신 주님이라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고 현세에서도 사람들이 영적인 사람들을 꺼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들은 나름 주님을 닮아서 성숙해 있습니다. 예수님을 닮았기에 성숙한 것입니다. 그러나 육적인 사람들은 부족합니다. 영적인 주님이 없기에 모든 것이 부족한 것입니다. 그래서 편협한 시각으로 사람을 보기에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육적인 사람들이 세상의 다수를 차지 한다는 것이고 그래서 지금 현재 영적인 사람들이 다시 예수님과 같이 세상으로 부터 미움을 받습니다. 그나마 성직자들은 그 신분으로 인해서 보호를 받지만 신자들 중에 영적인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로 부터 많은 공격을 받고 마음의 상처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이 이런 말씀하셨습니다. 나로 인해서 사람들로 부터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말씀에 의지해서 인내로 살아가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이 말씀하나 믿고 영적인 전쟁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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