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조욱현 신부님_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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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5-05 | 조회수239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오늘의 주제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으로 나타나야 하는 형제적 사랑이다. 그 근거는 요한에 의한 서간에 있다. 하느님의 성령은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들어오는 데 있어서 어떤 차별을 두시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대우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도 사람을 차별대우해서는 안 된다고 사도행전은 말하고 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그리고 인간은 하느님 모상을 닮았으므로 사랑의 모상이다. 이 사랑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니, 우리가 사랑한다면 우리는 삼위 일체적 삶으로 들어가게 되고 하느님께로부터 태어난다(1요한 4,7). 바로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태어나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2베드 1,4) 사랑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그 사랑을 표현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본 모습이다. 이 사랑의 계명은 주님의 "명령"이기 이전에 그리스도인의 "지침"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의 생활을 한다. 그것이 신앙인들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즉, 사랑이신(8절) 하느님께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이다.
오늘의 복음은 지난 주일의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더욱 발전시키고 있다. 즉 그리스도에 대한 결속과 공동체적 차원에서 그리스도께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9절).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 사랑함으로써, 그분과 일치하고 그분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하신다.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10절) 우리가 사랑을 산다면 우리는 그분 안에 머무르는 것이다. 사랑이 없이는 은총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비록 떠나시지만, 사랑으로 가지와 포도나무처럼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기에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살며, 그분과 튼튼히 연결되어 있어야 함을 말씀하신다.
이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11절) 우리 안에 있는 기쁨이란 그분과 친교를 나눈다는 의미이다. 우리 안에 있는 기쁨은 은총이다. 이 기쁨은 우리 신앙인 모두가 언제나 간직해야 할 기쁨이다. 우리의 기쁨은 하느님 안에서만 가질 수 있다. 그 기쁨을 가지려면 사랑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사랑하면서 가질 수 있기에 우리는 계속 나 자신과 싸워야 한다. 나를 이길 때 그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12절) 이것이 당신의 계명이라고 하신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로마 13,10)이라 하였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 있는 곳에 하느님께 대한 사랑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이 계명을 실천해야 한다. 그러면 다른 모든 계명도 지키게 될 것이다. 이 사랑의 계명 안에 모든 계명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라는 말씀은 바로 서로를 위해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시며 하느님이신 분이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13절) 그리스도께서는 친구들만이 아니라, 원수들을 위해서도 목숨을 내놓은 위대한 사랑을 보여 주셨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로마 5,8).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14절) 주님의 계명을 지키면서 그분의 친구가 되어 친교를 가질 수 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가 종에서 친구가 되게 해 주셨고 마지막으로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다. 그러기에 우리는 단계적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 부름을 받았기에 우리의 삶이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여 그분과 아름다운 친교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15절) 제자들은 하느님의 친구가 되었다. 이것은 당신이 하느님의 말씀이심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 말씀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따랐던 말씀이며, 그가 “하느님의 벗”(야고 2,23)으로 불렸던 말씀이다. 지혜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지혜가 사랑에 도달하면, 그 지혜는 우리를 하느님의 친구로, 자녀로 만든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은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17절) 사랑은 우리가 맺어야 하는 열매이다. 우리가 열매를 맺도록, 즉, 우리가 서로 사랑하도록 그분께서 우리를 부르셨다. 가지가 나무와 떨어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듯이, 우리가 그분과 떨어져서는 맺을 수 없다. 이 사랑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다. 이 두 사랑의 계명이 우리의 열매이다. 바오로 사도는 성령의 열매는 사랑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선택되었다는 것은 이런 친교가 그 이유이다. 우리가 당신을 따르기 때문에 당신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따름으로써 우리가 영광스러워졌다는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열매를 맺는 삶이다. 우리의 행실로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 열매로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인도하여 그들을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만들고, 열매를 맺는 이가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때 우리는 참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여 새 계명을 실천하는 삶을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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