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영근 신부님_2024년 5월 7일 부활 제6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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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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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05-07 | 조회수108 | 추천수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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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 16,22-34
그 무렵 필리피의 22 군중이 합세하여 바오로와 실라스를 공격하자, 행정관들은 그 두 사람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고 지시하였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앞부분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승천과 성령의 파견을 예고하시는 장면이고, 뒷부분은 세상에 대한 성령의 역할에 대한 말씀입니다. 뒷부분은 내일 복음과 함께 보도록 하고, 오늘은 앞부분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 16,5) 그러나 당신이 떠나간다는 말에 제자들의 마음은 근심이 가득 찼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보호자’이신 성령의 파견에 대해서 거듭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요한 16,7) 아니, 성령은 이미 당신과 함께 계시는 분이 아니신가? 그런데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고 하시니, 이는 무슨 말씀일까? 그레고리우스 역시 “내가 나의 육체를 너희 눈앞에서 사라지게 하지 않으면, 보호하시는 성령을 통하여 너희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끌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설합니다. 곧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의 눈이 ‘영적으로’ 열리게 되면 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어제가 가야 오늘이 오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곧 시간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함께 있으면서도, 오늘을 통하여 어제도 내일도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곧 삼위일체 하느님 사랑의 특성으로, 자신 안에서 자신이 아닌 타자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곧 아버지께서는 아들과 성령을 드러내시고, 아들은 아버지와 성령을 드러내시고, 성령께서는 아버지와 아들을 드러내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마찬가지로 우리가 진정 그분을 사랑한다면, 우리 안에서 우리 자신이 아닌 우리 안에 계신 그분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요한 16,7)
주님! 보는 것, 아는 것에 매여 있는 저를 부수소서. 저를 부수고 당신을 드러내소서! 제 눈을 비추시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시고, 제 자신에게 매이지 않는 당신 영을 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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