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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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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5-07 조회수237 추천수2 반대(0) 신고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그런데도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너희 가운데 아무도 없다.

오히려 내가 이 말을 하였기 때문에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찼다. 그러나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그들이 죄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고,

그들이 의로움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께

가고 너희가 더 이상 나를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며,

그들이 심판에 관하여 잘못 생각하는 것은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이미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요한 16,5-11).”

 

1)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분께 간다.” 라는 말씀은,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신 말씀입니다.

<‘승천’에 대한 암시도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너희

가운데 아무도 없다. 오히려 내가 이 말을 하였기 때문에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 찼다.” 라는 말씀은, “왜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슬퍼하기만 하느냐?” 라는 꾸중입니다.

예수님께 “어디로 가십니까?” 라고 물은 제자가

아무도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앞의 13장을 보면 베드로 사도가 물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요한 13,36).”

14장에는 토마스 사도의 질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요한 14,5)”

제자들은 처음에는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왜 가시는지

알고 싶어 했는데, ‘이별의 말씀’이 계속되면서 예수님께서

떠나신다는 슬픔에 점점 더 깊이 사로잡힌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신다는 말씀만 하신 것은 아닙니다.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요한 14,18-19).”

제자들은 다시 오겠다는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거나

흘려들었을 것입니다.>

 

2)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는데” 라는 말씀에서, ‘진실’이라는

말은 여기서는 ‘계시’를, 또는 ‘특별한 가르침’을 뜻합니다.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는, “내가 떠나도

너희의 이로움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입니다.

<이 말씀은, “내가 떠나지 않는 것은 너희에게 해롭다.” 라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이로움’은 ‘구원의 은총’을 뜻합니다.

“내가 떠나지 않으면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않으신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라는 말씀은,

“내가 떠나도 성령께서 너희에게 오실 것이고, 너희와 함께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내가 떠나야만 성령께서 오신다.” 라는

뜻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모습’의 당신은 떠나시지만, ‘성령을 통해서’

제자들과 함께 계시겠다는 것이 예수님 말씀의 뜻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떠나심’은 ‘이별’이 아니라,

‘존재 방식의 변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실 때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라고 약속하셨습니다(마태 28,20).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신 뒤에도 ‘성령을 통해서’ 언제나 항상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신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제자들은 최후의 만찬 때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예수님의 부활 후에는 완전히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은

슬퍼한 것이 아니라 ‘크게’ 기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베타니아 근처까지 데리고 나가신 다음,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루카 24,50-53).”

 

3) “보호자께서 오시면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그릇된 생각을 밝히실 것이다.” 라는 말씀은, “성령을 받으면

너희는 죄와 의로움과 심판에 관한 세상의 생각이 그릇된

것이었음을 확실히 깨닫게 될 것이고, 너희는 그 생각을

바로잡는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1)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

자체’가 죄라고 선포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구원받기를 거부하는 것이고,

그것은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고 거스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 자체가 죄입니다.

(2) 박해자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생각했지만, 제자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은

‘예수님의 의로우심’을(죄 없으심을) 증명한다고 선포했습니다.

<‘의로우신 분’이라는 말은, ‘죄 없으신 분’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3) 박해자들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죄인이 심판받은

일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제자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탄과 그것의 하수인들을 심판한

일이다.” 라고 선포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죽음의 세력인 사탄을 물리치고

정복한 일이기 때문에, 사탄을 심판한 일이고,

사탄의 하수인이 되어서 예수님을 죽인 박해자들을

심판한 일이기도 합니다.

 

[출처] 부활 제6주간 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평화의 사도들 원문보기 글쓴이: 정루시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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