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6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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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5-09 | 조회수217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2024년 05월 09일 목요일 [부활 제6주간 목요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오늘 복음에서 유독 눈에 띄는 문학적 기법이 있습니다. 두 개의 대조되는 낱말을 조합하여 주제를 두드러지게 하는 방법입니다. “조금 있으면”과 “다시 조금 더 있으면”이 대조되고, ‘보지 못하다’와 ‘보다’가 대조되며, “근심”과 “기쁨”이 대조됩니다. “조금 있으면”이라는 구문은 무려 일곱 번이나 나오는데, 그리스 말 본문을 그대로 옮기면 “조금 있으면(‘미크론’) …… 다시 조금 있으면(‘팔린 미크론’)”입니다. 이 구절은 ‘보다’라는 동사와 연결되어, ‘조금 있으면 보지 못하지만 다시 조금 있으면 보게 될 것’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내용을 만듭니다. 제자들조차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알 수가 없군.” 하며 술렁이자 예수님께서 그 의미를 설명하여 주십니다. 조금 있으면 예수님을 보지 못하게 되니 ‘근심’스럽겠지만, 다시 조금 있으면 볼 수 있으니 ‘기쁨’을 누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때 언급된 기쁨은 인간적 쾌락이나 즐거움과는 구별되는 매우 깊은 내적 감정으로, 지식이나 이론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서 깨닫는 역설적 신비를 일컫습니다. 상실을 체험하고 견딘 뒤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영적 기쁨’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는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에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은 빛나는 순간을 체험합니다. 이것은 은총입니다. 그러나 그 뒤 다시 어떤 사건을 만나면 이내 하느님의 부재를 느끼며 버려진 듯한 느낌에 좌절하기도 합니다. 이것 또한 은총입니다. 슬픔에 고통스러워하기도 하겠지만, 조금 더 있으면 그 슬픔이 다시 진정한 ‘기쁨’의 원천이 된다는 모순적 진리를 번갈아 체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어떤 순간에 체험한 가슴 아픈 ‘상실’이 조금 뒤에 지나고 보면 깊은 ‘기쁨’의 원천이 된다는 역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여정을 이끌어 주시는 분이 바로 ‘진리의 영’이십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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