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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죽음을 대하는 두 가지 삶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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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백봉7 쪽지 캡슐 작성일2024-05-09 조회수310 추천수2 반대(0) 신고

 

 

 

 

 

  

 

 

2024년 나해 부활 제6주간 금요일

 

 

 

<죽음을 대하는 두 가지 삶의 방식>

 

 

 

복음: 요한 16,20-23ㄱ

 

 

 


LORENZETTI, Pietro 작, (1325)  

   

 

    저는 어렸을 때 잠을 참 두려워하였습니다. 자고 못 일어나고 나의 존재가 영원히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저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내가 그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존재이니 걱정하지 않고 사는 것과 나는 그 두려움을 이길 수 없는 존재이니 ‘준비’하고 사는 삶입니다. 

 

 

    저는 준비하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온종일 행복하게 지내다 보니 잠이 두렵지 않은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루를 어떻게 행복하게 지낼까를 궁리했습니다. 이것이 잠을 이길 수 없는 자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모두가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온종일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 안에 그것을 해결할 능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적어도 많이 움직이고 땀을 흘리고 커피를 마시지 말고 잠자리까지 끌고 들어올 사건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생각이 나를 잠들지 못하게 만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삶이 현명한 삶인지 밝히십니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아이를 낳다가 죽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과 같은 고통은 아기를 낳은 기쁨으로 잊어버립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은 그것을 이길 수 있는 가치로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절대 이길 수 없는 것은 ‘죽음’입니다. 그런데도 내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존재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정말 죽음 앞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요? 

 

 

    ‘성모 꽃마을’ 박창환 가밀로 신부님의 ‘하늘 나라 첫 동네’에서 ‘전과 20범’ 환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세 명을 죽인 죄로 무기징역을 사는 죄수였는데 위암 말기로 가망이 없어서 성모 꽃마을에 맡긴 것입니다.

처음 들어올 때는 마귀와 같은 얼굴이었다고 합니다. 몸집도 큰데다가 합기도와 같은 무술도 도합 5단이나 되는 건장한 사람이었습니다. 위암 말기라고는 하나 그 살기가 대단하였습니다. 도박에 빠져 가정을 망친 아버지에 대한 증오로 어렸을 때부터 어긋나서 술만 마시면 싸움질이었습니다. 워낙 싸움을 잘했습니다. 몇 년씩 여섯 여자와 살았는데, 그중 한 여자가 이제 다른 남자와 살겠다고 그 남자와 함께 찾아왔습니다. 화가 난 그 사람은 남자와 여자를 한 대씩 때렸는데 둘 다 사망하였습니다. 형기를 마치고 출소해서 또 싸움하다가 한 명을 죽였습니다. 

 

 

    가밀로 신부님은 그 사람이 불쌍하여 수소문한 끝에 그의 동생의 연락처를 알아냈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형이 죽든지 말든지 신경 안 쓴다고 하고, 형도 몇 년 동안 연락도 없는 어머니와 형제들을 미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가밀로 신부님의 부탁으로 서로 좋은 말만 하기로 하여 만났습니다. 처음엔 형이 참지 못하고 욕설을 내뱉는 바람에 거기서 끝날 뻔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부님이 용서하지 않으면 지옥에 가게 된다고 해서 조금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못난 형을 둬서 미안하게 됐다고 사과하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사람이 죽는 거는 두렵지 않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용서는 절대 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간 출혈로 각혈을 하게 되자 조금씩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자기 입에서 피가 나오는 것을 보고는 죽음이 두렵기 시작한 것입니다. 형제들도 형과 조금 더 있다가 새벽에 출근하기도 하며 조금씩 화해하였습니다. 형이 마지막 숨을 거둘 때는 마음이 안정되었고 천사와 같은 얼굴이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잠도 이기지 못하는데 죽음을 어떻게 이긴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그 뒤에 무엇이 있든 상관없다니! 세상에 공짜로 주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생명은 공짜로 주어진 것처럼 여깁니다. 아닙니다. 이 세상은 무언가 준비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그 끝이 죽음입니다. 그러면 죽을 때도 기쁠 수 있는 무언가를 낳아야 합니다. 위 사람은 가밀로 신부님 말대로 용서라는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죽음을 준비한 것입니다. 

 

 

    교만으로 자신이 죽음 뒤에까지 다 감당할 수 있는 존재라고 여기지 맙시다. 그러면 준비하게 될 것입니다. 준비는 피를 흘리는 고통이 수반됩니다. 대신 그 순간이 오면 기쁨으로 넘칠 것입니다. 이는 야곱이 에사우를 만나러 가는 과정과 같습니다. 우리는 다 그리스도를 만나러 갑니다. 주님은 빈손으로 오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랑의 열매, 용서의 열매, 선교의 열매를 준비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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