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6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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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5-10 | 조회수248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2024년 05월 10일 금요일 [부활 제6주간 금요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주님 승천 대축일을 준비하면서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고별 담화’를 계속해서 전하여 줍니다. 특별히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 곧 수난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제자들에게 잠시는 ‘근심’스럽겠지만, 다시 조금 있으면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에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기쁨’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를 더욱 명확하게 설명하여 주십니다.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해산을 앞둔 여자의 이미지를 통하여 지금 제자들의 고통이 얼마나 혹독한지를 묘사하시고, 더 나아가 그 고통의 의미까지 알려 주십니다. 사랑하는 존재나 마음을 다하여 애착하던 것을 잃었을 때의 고통은 해산의 고통만큼이나 혹독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구원의 여정일 때, 반드시 ‘부활’과 새로운 ‘생명’이 주는 ‘기쁨’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온전히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났을 때의 기쁨은 ‘아무도 빼앗지 못합니다.’ 예술적 영감과 철학적 사고는 슬픔이나 비극에서 싹트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행하여야 행복을 그리워하고 슬퍼하여야 진정으로 기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생명은 죽을 만큼의 고통에서 태어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은 기쁨은 가식적 행복일 수 있고, 언제 슬픔으로 바뀔지 모르는 불안을 품고 있습니다. 영적 기쁨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이겨 내고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며 믿을 때 생기는 은총입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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