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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영근 신부님_ 2024년 5월 10일 부활 제6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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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5-10 조회수222 추천수4 반대(0) 신고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 18,9-18 

 

바오로가 코린토에 있을 때,
9 어느 날 밤 주님께서는 환시 속에서 그에게 이르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다.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기 때문이다.”
11 그리하여 바오로는 일 년 육 개월 동안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12 그러나 갈리오가 아카이아 지방 총독으로 있을 때, 유다인들이 합심하여 들고일어나 바오로를 재판정으로 끌고 가서,
13 “이자는 법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하느님을 섬기라고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4 바오로가 입을 열려고 하는데 갈리오가 유다인들에게 말하였다.
“유다인 여러분, 

무슨 범죄나 악행이라면 여러분의 고발을 당연히 들어 주겠소.
15 그러나 말이라든지 명칭이라든지 여러분의 율법과 관련된 시비라면,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시오. 

나는 그런 일에 재판관이 되고 싶지 않소.”
16 그러고 나서 그들을 재판정에서 몰아내었다.
17 그러자 모두 회당장 소스테네스를 붙잡아 재판정 앞에서 매질하였다.
그러나 갈리오는 그 일에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았다.
18 바오로는 한동안 그곳에 더 머물렀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프리스킬라와 아퀼라와 함께 배를 타고 시리아로 갔다.
바오로는 서원한 일이 있었으므로, 떠나기 전에 켕크레애에서 머리를 깎았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16,20-23ㄱ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21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22 이처럼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23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오늘날에는 아파하고 고통 받는 이들이 유난히도 많아 보입니다. 

슬픔과 외로움에 지친 이들, 부당한 처사로 괴로움을 당하는 이들, 근심걱정과 절망에 빠진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누군들 슬픔에서 해방되고 싶지 않는 이가 있을까요? 

누군들 고통과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 않는 이가 있을까요? 

기쁨을 향해 달려가지 않으려 하는 이가 있을까요?

그런데 대체 참된 기쁨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오늘날 세상의 슬픔과 고통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가장 깊이 공감하며 함께 아파하고 계신 프란치스코 교종의 권고문헌인 <복음의 기쁨> 제1항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줍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죄와 슬픔, 내적 공허와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참된 기쁨’을 예수님에게서 만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내 안에서’ 탄생되는 기쁨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요한 16,20)

제자들은 주님이 죽음에 처했을 때 슬퍼했지만, 그분께서 부활하신 것을 알자 그 슬픔은 기쁨으로 바뀌었습니다. 

제자들은 지금 신음하며 해산중입니다. 

해산을 마치면 그분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고통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기쁨이 너무 커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고 하십니다.

그때에는 '슬픔이 기쁨으로 바뀔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이 기뻐하는 것은 한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서가 아니라, ‘자신의 아기’가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기쁨은 아기가 ‘내 안에서’ 태어나야 오는 기쁨입니다.

 

그처럼 그리스도의 부활은 ‘내 안에서’ 이루어져야 됩니다.

그것은 내가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자신이 ‘새로 탄생하는 것’이 곧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요한 16,22)

그렇습니다. 

부활이 ‘내 안에서’ 탄생하는 이 기쁨은 빼앗겨지지도, 빼앗겨질 수도 없는 기쁨입니다.

 

사실 내가 기쁨을 낳은 것이 아니라 기쁨이 나를 낳은 것입니다.

이것야말로 바로 예수님께서 주신 ‘참된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예수님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임을, 죽음이 아니라 생명임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고통 속에서도 슬픔 속에서도 결코 기쁨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속에서도 주님은 늘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항상 함께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놓치지 않아야 할 일입니다.

스스로가 그 기쁨을 놓아버리지는 말아야 할 일입니다.

주님의 이 ‘사랑의 승리’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고별담화의 마지막을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다.”

(요한 16,33) 

 

<오늘의 말·샘 기도>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요한 16,22)

주님!

저에게는 자랑할 것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자랑하고 또 하고 또 해도 다하지 못할 자랑입니다.

방에 들라치면 먼저 들어와 있고,

일어날라치면 내 안에서 먼저 일어나고,

기도할라치면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임의 사랑’입니다.

바로 이것이 저의 기쁨입니다.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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