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하고 항구한 기도
"하느님, 내 주시여,
온 땅에 당신 이름 어이 이리 묘하신고."(시편8,10)
5월은 신록의 계절이자 꽃의 계절입니다. 끊임없이 피고지는 야생화 들꽃들을 보니 흡사 땅이 살아있는 보물밭처럼 느껴집니다. 살아 있는, 생명의 보물같은 곱고 신비로운 꽃들을 끊임없이 피어내기 때문입니다. 요즘 새롭게 눈에 띄기 시작한 붓꽃도 참 맘이 끌려 사진도 찍어 예전 써놨던 시와 함께 여러 지인들과 나눴습니다.
“사람이든 꽃이든
화려하여 깊지 못하면
얼마 못가 싫증난다
그늘진 깊숙한 곳에 숨겨진
보랏빛 붓꽃
은은하고 그윽하고 신비로워
늘 봐도 좋고 새롭고 정겹다”-1998.5.5.
26년전 시인데 지금도 5월 때되면 한결같이 피어나는 붓꽃들에 감동합니다. 참으로 기도할 때, 은은하고 그윽하고 신비로워 늘 봐도 좋고 새롭고 정겨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싯귀처럼 그런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런 관계의 주님이요 도반이요 부부관계라면 얼마나 멋지고 바람직하겠는지요!
기도가 답입니다. 기도밖에 길이 없습니다. 5월 성모성월은 기도의 달이자 참 행사가 많은 달입니다. 참 많이 기도해야 하는 5월입니다. 기도도 젊고 힘있을 때 많이 해야 하듯 이런 신록의 아름다운 계절에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가 더 잘 어울립니다. 오늘은 동학농민혁명을 기리기 위한 법정기념일입니다. 정부는 2018년, 1984년 부패정치와 외세에 맞서 일어난 동학농민혁명 과정중 황토현전승일인 5월11일을 동학농민혁명기념일로 정했고 올해로 130주년이 됩니다. 한국사람이라면 특히 기억해야할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요,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 10세기에서 12세기까지 서방 수도생활 개혁의 중심지 역할을 한 클뤼니 수도원의 초대 성인 아빠스들을 기립니다. 성 오도(927-942), 성 마욜로(948-994), 성 오딜로(994-1049), 성 후고(1049-1109), 가경자 베드로(1122-1156) 아빠스들은 무려 200여년동안 탁월한 능력과 지혜로 당시 쇠퇴했던 수도생활을 성공적으로 개혁했던 분들입니다.
괄목할 사항은 수도회 연합을 이루었고 영주들과 주교들로부터 자유를 획득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번성했던 클뤼니 수도원이 멸망한 결정적 이유는 기도와 일, 성독의 균형이 무너져 노동은 사라지고 전례기도가 하루를 가득채웠기 때문이라 합니다. 수도자는 물론 신자들의 일상에서 기도와 일, 성독의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 좋은 교훈을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고 일하라”에서 우선 순위는 중요합니다. 기도가 우선이라는 것이며 기도는 간절하고 항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한결같이'가 적용되는 기도생활입니다. 하루 삶의 중심과 질서를 잡아주는 기도입니다. 2014년 안식년중 8월말부터 10월초까지 800km 2000리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온지 올해 10년째 됩니다. 그동안 참 많이 나눈 순례여정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특히 희망의 여정중 희망의 순례자로 살것을 강조했고, 순례여정중 목적지, 이정표, 도반, 기도의 네 요소중 특히 결론 부분인 기도에 대해 그 일부를 나누고 싶습니다.
“궁극의 희망을 활성화시키는 기도입니다. 기도가 답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식이자 약입니다. 밥먹듯이 숨쉬듯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와 삶은 함께 갑니다. 기도하는 대로 살고 사는 대로 기도합니다. 기도가 없으면 희망도 시들어 버립니다. 희망의 순례 여정후 주님께 갔을 때 남는 얼굴은 둘중 하나일 것입니다. 기도한 얼굴인가 기도하지 않은 얼굴인가 입니다. 기도가 얼굴꼴을 만들어 줍니다. 기도할 때 주님을 닮습니다. 순례 여정이 끝난후 주님은 당신의 얼굴을 닮았는지 우리 마음의 얼굴을 검사할 것입니다.
기도는 테크닉(기술)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사랑밖에 길이 없습니다. 기도와 함께 가는 사랑입니다. 하느님과 소통의 사랑과 생명의 대화가 기도입니다. 매순간 하느님을, 그리스도를 숨쉬듯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기도요, 역시 기도에도 우리는 영원히 초보자 일 수뿐이 없습니다.”
광야인생 여정중 저는 늘 세가지 인간 가능성을 말합니다. 성인, 괴물, 폐인입니다. 참으로 간절히, 항구히 기도할 때 성인이요, 기도에 소홀하여 세상 것들에 유혹, 중독될 때 괴물이나 폐인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 훈련, 습관의 영적도식을 강조합니다. 무엇보다 기도의 선택, 기도의 훈련, 기도의 습관입니다. 이 또한 주님 사랑의 자발적 표현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께서도 강조하는 바 기도입니다. 역시 한숨에 읽혀지는 복음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예수님 이름으로 청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날로 사랑하여 예수님을 닮아갈 때, 예수님 이름으로 청하는 우리의 기도는 그대로 하느님의 뜻에 따른 기도가 되고 100% 응답될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충만한 기쁨이 보너스 선물처럼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기쁨 하면 떠오르는 기쁨과 감사, 기도의 사도 바오로입니다. 사도의 옥중 서간 필립비서 다음 말씀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에게 보이십시오.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필립4,4-6)
오늘 사도행전에서 보다시피 바오로 사도의 3차 선교여행이 시작됩니다. 선교 여정에 오른 바오로는 가는 곳마다 모든 제자들의 힘을 북돋아 주니 기쁨에서 나오는 지칠줄 모르는 열정임을 깨닫습니다. 이어 혜성같이 등장한 아폴로, 어찌보면 하느님께서 교회에 주신 기쁨의 선물처럼 감사하는 마음이 듭니다. 사실 기쁨보다 더 좋은 선물도 없을 것입니다.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와 더불어 충만한 기쁨의 선물입니다. 이런 충만한 기쁨이 없다면 기도에 뭔가 문제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다산 정약용 요한 어른의 오늘 말씀입니다.
“아이의 눈에는
부모의 품격이 깃든다.
자식은 곧 부모의 거울이다.”
부모를 그대로 보고 배워 아이의 눈에 부모의 품격이 깃들 듯, 주님을 보고 배울 때, 우리의 눈에는 주님의 품격이 깃들 것이며, 우리에게서는 꽃향기처럼 그리스도의 향기가 날 것입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도 참 귀하고 고맙습니다.
“그날에 너희는 내 이름으로 청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청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바로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
오늘이 그날입니다. 영원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순간 순간위에 빛나는 영원이요 순간이 바로 영원이요 구원임을 기도할 때 깨닫습니다. 그러니 예수님 이름으로 청하는 것입니다. 자신감을, 자존감을, 자부심을 지니십시오.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하느님에게서 나오셨음을 믿기에 아버지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복된 운명도 예수님을 통해 다시 확인합니다. 허무로 시작하여 허무로 끝나는 덧없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고 믿는 우리들 역시 예수님처럼 아버지에게서 세상에 나왔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간다는 것입니다. 죽어도 죽음이 아니니, 우리는 갈 곳이 있다는 것이며 이래서 우리의 삶을 아버지 집으로의 귀가 여정이라 칭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천상병 교우처럼 귀천을 노래할 것입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귀천이 귀가입니다.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여정중인 우리들입니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휴가 끝내고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귀가할 수 있도록 간절하고 항구히 기도하도록 합시다. 귀가 여정에 날마다 이 거룩한 미사전례기도 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하느님, 하시는 일로 날 기쁘게 하시니
손수하신 일들이 내 즐거움이니이다,"(시편92,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