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7주간 수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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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5-14 | 조회수380 | 추천수8 | 반대(0) |
요즘 ‘시간에 묻힌 한 사제의 삶’을 읽고 있습니다. 신부님은 혼자서 미국 횡단을 3번이나 하셨습니다.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는 유람선 사목을 하셨습니다. 1937년에 태어났으니 87세의 고령입니다. 하지만 지금도 수녀원이나, 양로원에서 청하면 기쁜 마음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책의 내용 중에 신부님께서 1959년에 세례를 받을 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부님은 자신이 세례를 받아야 할 이유 4가지를 질문하였고, 본인이 질문에 답을 하면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세례를 받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노력했는가?’였습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답을 하였습니다. “나는 세례를 받기 전에 거의 3년이나 성당에 다니면서 배우고 체험하여 마음 깊은 데까지 나름대로 신앙에 젖었기에 앞으로 때에 따라 가톨릭 신앙을 저버리거나 냉담하지 않을 것 같다. 설령 이 신앙에 회의가 찾아온다고 하더라도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두 번째 질문은 ‘가톨릭 신앙에 대한 보람을 변함없이 느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답을 하였습니다. “난생처음 가톨릭 신앙을 접한 순간에 받은 첫인상이 워낙 강했다. 마치 순간적으로 지상에서 천국을 경험하는 것과 같은, 그간의 내 삶을 통해서는 도저히 체험하지 못하였던 기쁨에 휩싸였다. 나는 가톨릭 신앙을 갖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늦게나마 가톨릭 신앙을 알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세 번째 질문은 ‘정식으로 가톨릭 신자가 되기 위한 첫 관문인 세례성사 받기를 진심으로 원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답을 하였습니다. “예” 아주 간단하고 명확한 답변을 하였습니다. 네 번째 질문은 ‘세례 받을 사람에게 본당 신부님이 요구하는 교리문답 325개를 완전히 암기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답을 하였습니다. “나는 교리문답 325개 항의 문제와 답을 한 자도 어김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암기했다.” 저는 예비자 교리를 가르쳤고, 많은 분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세례를 받고자 하는 갈망이 있는 사람과 이유가 있어서 세례를 받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갈망이 있는 사람은 세례를 받은 후에도 신앙의 깊이와 맛에 젖어 들었습니다. 이유와 목적이 있어서 세례를 받는 사람은 세례를 받은 후에 신앙이 점차 퇴색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미 목적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갈망에서 시작됩니다. 신앙은 기도로 자라납니다. 신앙은 말씀으로 꽃이 핍니다. 신앙은 나눔으로 열매 맺습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바로 그런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습니다.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이 두 손으로 장만하였다는 사실을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모든 면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애써 일하며 약한 이들을 거두어 주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라고 친히 이르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흐느껴 울면서 바오로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다시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고 한 바오로의 말에 마음이 매우 아팠던 것이다. 그들은 바오로를 배 안까지 배웅하였다.” 바오로 사도는 갈망이 컸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생의 전부입니다. 이제 내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십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지금 죽는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이들을 미워하였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제자들에게 닥쳐올 박해와 시련을 예견하셨습니다. 유대인 공동체와 이방인 공동체의 갈등과 분열도 예견하셨습니다. 교회가 커지고 조직화 되면서 소외되는 사람이 생기는 것도 예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 두 가지 청원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는 용기를 청하셨습니다. 진리로 거룩하게 되기를 청하셨습니다. 그 진리는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듯이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갈등과 아픔을 만나게 됩니다. 산을 넘으면 또 산이 나오듯이 우리는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 기쁨도 찾아오고, 슬픔도 찾아오고, 즐거움과 분노도 찾아옵니다. 모든 갈등과 아픔을 벗어나서 행복에 이르는 지름길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고통과 아픔을 이겨 낼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청하는 것입니다. 그 시작은 ‘갈망’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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