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7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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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5-15 | 조회수368 | 추천수5 | 반대(1) |
어릴 때, 감동적으로 읽은 ‘동화’가 있습니다. ‘의좋은 형제’입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형은 이제 막 혼인한 동생을 생각했습니다. 동생에게 필요한 것들이 많을 거로 생각한 형은 늦은 밤에 추수한 벼를 동생의 논으로 가져다주려고 나섰습니다. 동생도 형은 아이들이 많으니 필요한 것들이 많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늦은 밤 추수한 벼를 형의 논으로 가져다주려고 나섰습니다. 둥근 달이 바라보는 가운데 형과 동생은 추수한 벼를 지게에 지고 만났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형제는 서로 부둥켜안았습니다. 제가 이 동화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 모습이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의 삶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의 유산을 더 차지하려고 형제들이 법정에서 다투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아픈 부모를 모시지 않으려고 형제들이 핑계를 대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내 것을 나누지 않으려는 욕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형제가 잘 되는 것을 배 아파하는 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형제의 난’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형제들끼리도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합니다. 재물을 위해서라면 형제들이 서로 고발하기도 합니다. 며칠 전입니다. ‘의좋은 형제’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날은 성당에 일이 많았습니다. 오전에 장례미사가 있었고, 오후에는 구역미사와 본당미사가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꾸르실료 모임과 전례분과 모임이 있었습니다. 구역미사를 마치고 식사하는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꾸르실료 모임과 전례분과 모임의 방이 겹치는 것입니다. 그 방에 영상을 볼 수 있는 시설이 있는데 두 단체 모두 그날 영상을 이용해서 모임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전례분과는 꾸르실료에게 방을 양보하려고 하였습니다. 꾸르실료에서 영상을 이용한 교육을 하기 때문입니다. 꾸르실료는 전례분과에게 방을 양보하려고 하였습니다. 모임이 겹치면 본당전체 행사를 준비하는 모임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서로 양보하려 하니 문제 해결은 쉽게 되었습니다. 영상을 볼 수 있는 다른 방을 알아보았고, 꾸르실료 모임이 그곳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여기에 감정이 들어가면 문제가 복잡해지곤 합니다. 욱하는 마음에 말이 거칠어지면 문제가 복잡해지곤 합니다. 내가 먼저라는 이유를 찾으면 문제가 복잡해지곤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주님은 바오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바오로 사도는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는 부활에 대한 생각이 달랐습니다. 바리사이는 부활이 있다고 하였고, 천사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두가이는 부활이 없다고 하였고, 천사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부활이 있다고 하면서 바리사이와 사두가이 서로 갈등하고, 분열하게 하였습니다. 천인대장은 바오로 사도를 보호하기 위해서 안전한 곳으로 바오로 사도를 옮기도록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바오로 사도가 지혜롭게 처신한 것을 칭찬한 것이 아닙니다. 의좋은 형제처럼 자신의 것을 기꺼이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먼저 상대방에게 주는 것입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새기 마련입니다. 집에서 새지 않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새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디에서나 통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해 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소서. 아버지가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소서.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누는 것입니다. 조건 없이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빵이 되셔서 우리에게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사를 통해 주님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나눔은 우리가 하나 되는 지름길입니다. 우리가 함께 나눌 수 있다면, 신앙 안에서 주님과 하나 될 수 있다면 그런 모든 것도 기쁨으로 변하리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삶이 증거자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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