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부활 제7주간 금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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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5-17 | 조회수276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부활 제7주간 금요일] 요한 21,15-19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오늘 복음은 부활하시어 세번째로 제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물으시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질문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기에,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총 세 번에 걸쳐 물으시기에 그 의도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과 묵상들이 나와있지요. 그 중 가장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사랑의 보속’이라는 해석입니다. 베드로는 인간적인 나약함과 두려움 때문에 총 세 번에 걸쳐 예수님과의 관계를 부정하는 죄를 저지릅니다. 물론 즉시 통회의 눈물로 회개하며 예수님께로 돌아왔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스승님을 배신했다는 죄책감과 영적 수치심이 아직 남아있었지요. 그렇게 마음이 주눅든 상태로는 주님과 제대로 관계 맺을 수가 없으니,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보속할 기회를 주시어 그가 마음 속 상처를 치유하고, 배신으로 망가져버린 당신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다는 겁니다. 즉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는 예수님의 초대에 “예”라고 응답하며 따르는 것이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주신 ‘사랑의 보속’인 것이지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왜 세 번이나 당신을 사랑하는지 물으셨을까요? 당신을 향한 베드로의 마음을 모르셔서도 아니고, 그의 사랑을 시험하시기 위함도 아닙니다. 베드로가 그 물음을 계기로 하여 주님과의 관계 안에서 자기 모습을 깊이 성찰해 봄으로써 무엇이 부족한지를 스스로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또한 그 깨달음이 그저 머리로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그의 마음 속에 의지를 불어 넣으시기 위함입니다. ‘나는 이 정도밖에 안되는구나’라는 자기반성을 통해 ‘그러니 주님께 더 간절히 매달리고 따라야겠다’는 결심에 이르도록 일종의 ‘사랑 다지기’를 하신 셈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그런 깊은 뜻을 알 리 없었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다는 사실에 깊은 슬픔을 느낍니다. 여기서 ‘슬퍼하다’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 ‘뤼페오’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갔던 부자 청년이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라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갔다는 마태오 복음에 나오는 것과 같은 동사입니다. 그리고 그 뜻은 ‘어떤 정해진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 느끼는 슬픔’을 가리키지요. 그런데 베드로가 그런 슬픔을 느끼게 만드시는 것 또한 주님의 뜻과 계획 안에 있었습니다. 자신을 향한 예수님의 크고 깊은 사랑에 비해 그분을 향한 자기 사랑이 한없이 부족하다는 데에서, 주님께서 자신에게 기대하시는 사랑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데에서 슬픔을 느끼기를 바라셨던 겁니다. 다만 그 슬픔이 체념과 절망으로 끝나서는 안되었습니다. 그러니 죽기살기로 더 열심히 주님을 따라야겠다는 결심과 실행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베드로의 세번째 대답을 들으신 후 “나를 따라라”라고 말씀하신 것도 그 때문이지요.
그런데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보속’은 ‘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한 후에 실행하는 보속은 벌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미 나에게 베풀어주신 용서와 자비, 사랑에 나 또한 사랑으로 응답하는 일입니다. 베드로 사도도 그런 마음으로 보속을 실행했을 겁니다. 주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용서와 사랑으로 자기에게 맡겨진 신자들을 돌보았을 겁니다. 사랑 없이 그저 의무감만으로 행한다면 그건 보속이 아니라 ‘벌’이 됩니다. 그러니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랑의 계명을 ‘벌’처럼 행하여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지 말아야겠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사랑을 실천하여 상대방과 나 모두가 그 사랑이 주는 기쁨을 마음껏 누려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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