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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교회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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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5-18 조회수209 추천수3 반대(0) 신고

 

 

“베드로가 돌아서서 보니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 제자는 만찬 때에 예수님 가슴에 기대어

앉아 있다가, ‘주님, 주님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던 사람이다. 그 제자를 본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형제들 사이에 이 제자가 죽지

않으리라는 말이 퍼져 나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가

죽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제자가 이 일들을

증언하고 또 기록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 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요한 21,20-25).”

 

1) 이 이야기의 바로 앞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의 순교를 예언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요한 21,18).”

이 말씀을 들은 베드로 사도는, 바로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요한 사도의 일이 궁금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각자 자신이 받은 소명을(탈렌트를)

충실하게 수행하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올 때까지”는 “내가 재림할 때까지”입니다.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라는 말씀은,

여기서는 “내가 재림할 때까지 그가 수행해야 할 어떤 일을

내가 맡겼다 하더라도” 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라는 말씀을 겉으로만

보면, 베드로 사도를 무시하신 것 같은, 또는 베드로 사도의

질문을 무시하신 것 같은 말씀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그것은 아니고, “그의 소명을(탈렌트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

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존중’은 일치와 협력을 위한 일입니다.

만일에 남의 일에 전혀 관심 갖지 않고 자기 일만 한다면,

그것은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무시하는 것이고,

일치가 아니라 분열입니다.>

 

2)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교회 전체를 다스리고

돌보는 일을 맡기셨습니다(요한 21,15-17).

요한 사도에게는 당신의 행적과 말씀을 문서로 기록하는 일을

맡기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두 사도의 임무는 경쟁 관계도 아니고, 대립 관계도 아니고,

‘예수님의 일’이라는 ‘하나의 큰 일’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일들입니다.

따라서 그 일들은 모두 사실상 하나의 일이고,

같은 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서로 존중하면서 함께 협력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다른 사도들의 일도 전부 다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공동체에 대해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에페 2,20-22).”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 덕분에, 영양을 공급하는 각각의

관절로 온몸이 잘 결합되고 연결됩니다. 또한 각 기관이

알맞게 기능을 하여 온몸이 자라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랑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에페 4,15-16).”

 

3) 주님께서 제자들에게(신앙인들에게) 각각 다른

소명을(탈렌트를) 주신 것은 ‘공동선’을 위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그리하여 어떤 이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이,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에 따라 지식의

말씀이 주어집니다(1코린 12,7).”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사실은 하느님께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각의 지체들을

그 몸에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겪습니다.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기뻐합니다(1코린 12,12.18.26).”

그래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장 큰 성령의 은사’는

‘사랑’입니다(1코린 12,31).

<만일에 사랑이 없는 채로, 또는 사랑 실천을 하지 않으면서,

혼자서만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간다면,

그것은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신앙인들의 공동체는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서

하나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한 몸인 공동체입니다.>

 

4) 24절-25절의 말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이나 말씀들이

‘성경’으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성전(聖傳)’으로도

전해진다는 것을 나타낸 말인데,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이나

말씀들은, 처음에는 입에서 입으로, 즉 구전으로만

전해졌다가, 그 가운데 일부가 성경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록되지 않은 일들이나 말씀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사도들의 편지나 다른 문서들에 기록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성전도 거룩한 계시로 믿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출처] 부활 제7주간 토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평화의 사도들 원문보기 글쓴이: 정루시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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