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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영근 신부님_2024년 5월 19일 성령 강림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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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5-19 조회수247 추천수5 반대(0) 신고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 2,1-11 

 

오순절이 되었을 때 사도들은 

1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2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3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4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5 그때에 예루살렘에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온 독실한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6 그 말소리가 나자 무리를 지어 몰려왔다.
그리고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지방 말로 듣고 어리둥절해하였다.
7 그들은 놀라워하고 신기하게 여기며 말하였다.
“지금 말하고 있는 저들은 모두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닌가?
8 그런데 우리가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
9 파르티아 사람, 메디아 사람, 엘람 사람, 또 메소포타미아와 유다와 카파도키아와 폰토스와 아시아 주민,
10 프리기아와 팜필리아와 이집트 주민, 키레네 부근 리비아의 여러 지방 주민, 여기에 머무르는 로마인,

11 유다인과 유다교로 개종한 이들, 그리고 크레타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인 우리가 저들이 하느님의 위업을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언어로 듣고 있지 않는가?”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 12,3ㄷ-7.12-13 

 

형제 여러분,
3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4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5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6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7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12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13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20,19-23 

 

19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21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22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성령을 받아라.”>


오늘은 성령강림 대축일입니다. 

성령께서는 오늘도 갖가지 모습으로 저희에게 오시고 함께 현존하시며 동행하시지만, 특별히 오늘 말씀 전례에서는 성령께서 오시는 두 가지 모습을 보여줍니다. 

제1독서에서는 ‘놀라운 모습’, 곧 하늘에서 세찬 바람의 소리와 불과 혀의 모양으로 내려오십니다.

그리고 복음에서는 ‘고요한 모습’, 곧 닫혀진 문을 뚫고 아무런 소리도 없이 부드러운 숨결로 들어오십니다.

 

이 두 가지 모두 하늘 문을 열거나, 땅의 문을 열거나, 모두 ‘닫힌 문’을 열면서 벌어집니다.

곧 성령의 활동은 ‘문을 여는 일’을 통해 드러납니다.

곧 성령께서는 하늘을 가르고, 닫혀진 문을 부수고, 가려진 장막의 휘장을 찢고, 죽음에 갇힌 무덤을 풀며, 우리의 굳은 마음의 문을 여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이 문을 열고 땅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묘한 것은 하늘은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 열리고, 닫힌 문은 마음에서 열린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하늘이 열리는 자리는 바로 우리네 삶의 자리입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이미 우리 마음 깊은 곳에 계시고, 그러기에 다른 먼 곳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바로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성령께서는 바로 지금 여기 우리 가운데서 활동하신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성령이 베풀어졌고, 우리는 이미 그분 신비체의 몸입니다. 

제2독서에서는 이를 잘 말해줍니다.

‘신비체’는 지체로 이루어진 ‘한 몸’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몸은 바로 성령에 의해 지탱되고 존속됩니다.

그 지체를 서로 결합시키고 하나로 묶어주는 힘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발현하시어 '평화'를 주시는 장면과 성령으로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시는 장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로써 하느님의 ‘협력자’이시요 우리의 ‘협력자’이신 ‘성령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새 백성이 탄생되고, 새 시대가 열리고, 그리스도 몸의 신비체인 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것은 ‘닫혀진 문’을 열고 들어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더 이상 ‘닫혀진 문’ 뒤에 숨어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문을 잠가 놓고 있을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닫혀진 문’을 뚫고 들어오시어 '평화의 인사'를 나누십니다.

팔레스티나에서 보통으로 표현하던 이 인사는 이제 인간의 구원을 약속하시는 인사가 됩니다.

이제 이 평화는 주님의 축복이요, 선물이 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재가 방황이요 두려움이라면, 예수님의 현존이 곧 기쁨이요 평화입니다. 

예수님의 현존으로 이제 공포는 기쁨으로 바뀌고, 혼란스러운 무질서는 질서를 찾습니다.

예수님께서 공포와 두려움에 ‘닫혀진 마음의 문’을 열고서 ‘성령’의 숨결을 불어넣으셨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 ‘평화의 전령’으로 제자들을 파견하십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20,21-22)

이제 제자들은 평화의 도구, 구원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주님이 주신 이 평화를 서로 나누어야 할 뿐만 아니라, 세상 안에 이 평화를 건설해야 하는 사명을 짊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평화로운 사람’이 되기보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마태 5,9) 

그런데 이 ‘평화’는 우리의 힘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평화는 우리가 이루는 평화가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이루는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협조자 성령’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숨을 불어넣으시며 말씀하셨다'고 할 때, ‘숨을 불어넣으셨다’는 말의 원어의 번역은 ‘숨을 건네주었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당신의 생명을 건네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모두 용서하시고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건네주시며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를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성령을 받아라.”는 말씀은 너희는 ‘이미 용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밝혀주며, 그러니 ‘너희도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용서’를 통해 평화를 이루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용서’할 때 ‘평화’는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먼저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먼저 당신의 숨을 불어넣으시어 새롭게 하십니다.

당신의 생명으로 우리에게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우리가 용서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렇게 평화를 주시고, 우리가 평화를 위해 일하게 하십니다.

바로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현존하시고, 우리 가운데서 활동하십니다. 

오늘 이 감격스런 성령의 활동에 자신을 승복하고, 하느님의 현존에 푹 젖는 성령강림절이 되길 바랍니다.

바로 오늘이 ‘용서와 평화의 축제’가 되길 바랍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성령을 받아라.”

(요한 20,22)

성령이시여!

제 안에 흐르소서!

흐르는 골골에 찌든 때를 벗기시고, 반역과 죄를 몰아내소서!

아픔과 상처 어루만지시고,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소서!

멍들고 굳어진 마음 문지르시고, 접히고 구겨진 마음 펼치소서!

막히고 닫힌 마음 열치시어, 당신 숨결 흐르게 하소서!

새로워지고, 새롭게 살게 하소서!

용서받았으니, 용서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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