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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5-20 | 조회수444 | 추천수5 | 반대(0) |
인체의 호르몬 중에 ‘도파민’이 있습니다. 이 호르몬은 즐거움과 쾌락을 느끼게 해 준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들이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즐거움입니다. 새로운 여행과 모험을 떠나는 것도 즐거움입니다. 게임을 하고, 스포츠를 보는 것도 즐거움입니다. 노래하고 춤추는 것은 즐거움입니다. 도박과 마약도 즐거움입니다. 연애도 즐거움입니다.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도 즐거움입니다. 조금 고상하게 맹자는 인생의 3가지 즐거움을 이야기했습니다. 첫째 부모가 모두 살아계시고 형제들이 아무런 일없이 건강한 것이 즐거움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고, 땅을 내려 보아 남에게 창피하지 않게 사는 인생이 즐거움이라고 했습니다. 셋째 천하의 똑똑한 영재들을 모아 그들을 가르치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류학자는 인간을 ‘Homo Ludens(즐거움을 찾는 존재)’라고 정의하기도 합니다. 인류의 문명과 문화는 즐거움을 추구하고, 즐거움을 찾으면서 발전했습니다. 문학, 미술, 음악, 예술은 이런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발전하였습니다.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그렇게 이끌기도 하고, 즐거움을 추구하기에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인체의 호르몬 중에 ‘세로토닌’이 있습니다. 이 호르몬은 안정과 평화를 느끼게 해 준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안정과 평화를 주는 것이 있습니다. 피정은 ‘피세정념(避世靜念)의 줄임말입니다. 세상을 피해서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찾는 것입니다. 측은지심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강도당한 사람을 치료해 주고, 여관으로 데려간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당한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선교회의 마더 데레사 수녀님, 아프리카 수단의 이태석 신부님, 꽃동네의 오웅진 신부님, 요셉 의원의 선우경식 선생님은 평생 어려운 이웃을 도왔습니다. 그들의 이웃이 되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참된 행복’을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자비를 베푸는 사람,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인류의 문명과 문화는 안정과 평화를 추구하면서 발전하였습니다.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그렇게 이끌기도 하고, 안정과 평화 그리고 헌신과 나눔을 추구하기에 세로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나오기도 합니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도파민이 가속 페달이라면 세로토닌은 멈춤 페달입니다. 가속 페달이 없는 차는 움직이지 않지만 멈춤 페달이 없는 차는 사고가 납니다. 둘의 조화가 필요합니다. 진정한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도파민이 이끄는 삶과 세로토닌이 이끄는 삶의 균형을 도모해야 합니다. 본당의 사목도 이런 균형을 유지하면 좋습니다. 교우들의 친교를 도모하기 위해서 체육대회, 본당의 날, 음식 나눔을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주일학교 학생들을 위해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습니다. 적당한 유머와 놀이는 집의 창문과 같아서 활력을 줍니다. 본당에 도파민과 같은 호르몬이 함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가하면 성경공부와 피정, 봉사활동이 있어야 합니다. 주일학교 학생들은 가난한 나라에 가서 집을 지어주기도 하고, 영어를 가르쳐 주기도 하면서 신앙의 자긍심을 얻기도 합니다. 어른들은 가난한 나라에 가서 의료봉사를 하면서 복음의 기쁨을 얻기도 합니다. 재미와 의미라는 두 날개로 본당이 균형을 이룬다면 활력과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 앞에 나설 때, 하느님은 우리의 직책이나, 우리의 업적을 보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보실 것입니다. 하느님을 찬미하면서 살았던 우리들의 삶을 보실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직책이나 자리를 가지고 다투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불편한 것을 참을 수 있다면, 잠시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소중한 것을 먼저 생각 할 수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낄 수 있습니다. 세상은 어쩌면 우리가 보고 싶은 대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돈, 명예, 권력, 성공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경쟁해야 하고, 이겨야 하고, 이기기 이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지지 않도록 강요합니다. 나눔, 사랑, 겸손, 봉사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온통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곳입니다. 우리 또한 서로 사랑하고, 서로 믿으며, 같은 곳을 향해서 가는 동반자입니다. 제자들은 십자가를 지고 살아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도 못하였고, 그 의미를 묻지도 않았습니다. 재미만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교회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요? 오늘 사제들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고 있을까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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