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수철 신부님_추억의 힘, 추억의 기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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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5-23 | 조회수298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추억의 향기 “죄를 짓지 마십시오, 서로 사랑하십시오”
요즘 새삼 추억의 힘을 실감합니다. 현재 모든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지녔어도 과거 어렸을 때 상처와 어둡고 아팠던 추억으로, 특히 어머니로 인한 아픈 추억으로 힘들고 불행하게 지내는 이들을 의외로 많이 만납니다. 반면 어렵고 가난했어도 반듯하고 모성애 풍부했던 어머니를 지녔던 이들은 그 추억의 힘으로 평생을 행복하게 삽니다.
어렸을 때 특히 어머니의 사랑을, 사랑의 추억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녀들에 대한 본의 아닌 사랑 결핍의 원인을 제공한 어머니들이 후에 자녀로 인해 겪는 고통은 끝이 없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 특히 어머니의 사랑에 이어 평생 친구와의 우정 또한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성서에서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의 본보기를 아실 것입니다. 저는 조선시대 학자들중 감동적인 평생 우정의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율곡 이이와 우계 성혼의 우정이요, 다산 정약용과 자산어보의 정약전 형제간의 우정이 정말 감동적이자 대표적입니다. 이 네분 천재학자들의 평전을 보면 평생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친 우정인지 깨닫게 됩니다. 좋은 추억에도 결정적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우정입니다. 여기서 참으로 추천하고 싶은 것이 우리의 영원한 스승, 예수님과의 평생 사랑의 우정입니다. 오늘 옛 어른 다산의 말씀이 가슴을 칩니다.
“외로운 천지 가운데 나의 형 정약전을 잃고 말았다. 이제부터는 얻는 바가 있어도 장차 어디에 말하겠는가?”
자산어보의 저자이자 평생 학문을 나눴던 정약전 형님이 흑산도 유배중 죽었을 때 다산의 탄식입니다. 과거는, 과거의 추억은 죽지 않습니다. 좋은 추억이든 나쁜 추억이든 죽기는커녕 살아서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이를 일컬어 추억의 힘, 추억의 기쁨, 추억의 향기라 칭하고 싶고 그대로 오늘 강론 제목으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부제로 둘을 더했습니다.
“죄를 짓지 마십시오!” “서로 사랑하십시오!”
이래야 나쁜 추억은 치유되고 오늘부터 나쁜 추억을 만들지 않을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참 특이한 것이 나이 먹을수록 추억의 힘, 추억의 기쁨, 추억의 향기가 강렬해짐을 느낍니다. 좋은 추억이 현재와 미래의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을 봅니다. 며칠전의 강렬한 체험을 잊지 못합니다. 과거를 살며시 열어봤을 때 은은하고 그윽한 추억의 향기를 강하게 느낀 체험입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 사랑과 마을 친구들과의 우정, 학교 다닐 때, 군대 시절, 교편시절, 수도생활, 산티아고 순례 여정, 그리고 거기서 만났던 정답고 그리웠던 이들등 모두가 살아 있는 고유의 추억의 향기를 발하는 듯 했고 순간 기뻤고 행복했습니다. 추억의 향기요 추억의 힘이요 추억의 기쁨이요 추억의 행복입니다. 추억을 사랑으로 바꿔도 무방하겠으니 사랑의 향기, 사랑의 힘, 사랑의 기쁨, 사랑의 행복임을 깨닫습니다. 며칠전 교황님의 미국 시카고 로욜라 예수회 대학 교수진을 만났을 때 말씀도 잊지 못합니다.
“부지런한 꿈꾸는 자들이 되십시오(Be ‘diligent dreamers’). 꿈꾸는 능력을 상실한 사람은 창조력이, 시심이 결핍되고, 시가 없는 삶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합니다. 삶의 순례여정중 여러분 안에 이런 갈망으로, 꿈으로 언제나 깨어 살도록 하십시오.
앞으로 계속 나가기 위해서, 여러분은 언제나 여러분의 뿌리들로 돌아가야 합니다. 역동적인 뿌리들(dynamic roots)입니다. 여러분은 뿌리들 없이는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거가 뿌리들로부터 힘을 끌어내기 때문입니다. 추억의 힘!
여러분은 영롱한 정신만 연마할뿐 아니라, 관대한 마음과 모든 사람의 위엄을 존중하는 양심을 연마하십시오. 교육은 세 차원에서 일어납니다. 머리, 마음, 손입니다. 느끼고 행하는 것을 생각하고, 생각하고 행하는 것을 느끼며, 생각하고 느낀 것을 행하십시오.
정신(mind), 마음(heart), 손(hands)은 분리됨이 없이 함께 성장합니다. 오직 셋이 함께 시대의 현실과 요구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희망없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희망을 잊지 않도록 합시다. 닻과 같은 희망이요 희망의 끈을 놓지 마십시오. ‘희망은 결코 실망시키지 않습니다(Hope never disappoints)’.”
뿌리의 추억이 희망의 꿈과 하나될 때 부단한, 한결같은 진전이요 도대체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사랑의 좋은 추억 쌓기에도 턱없이 짧은 세상, 죄로 인해 자기를, 삶을 파괴하면 복구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죄도 젊고 힘있을 때 짓고 용서받을 일이지 늙고 약할 때 죄를 지으면 손실이 너무 크고 후유증도 오래 갑니다. 약먹으며 은총으로 살아가는 인생들인 데, 사랑하며 좋은 추억 만들어가기에도 너무나 짧은 황금인생들인데 죄짓느라 아까운 인생 낭비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복음은 죄의 유혹을 단호히 물리치라는 참으로 절박한 경고이자 명령입니다. 손이 죄짓게 하면 잘라버리고, 발이 죄짓게 하면 잘라 버리고, 눈이 죄짓게 하면 빼 던져버리라 하십니다. 이런 충격요법의 표현은 죄의 결과가 초래하는 불행이 너무 크기에 결코 죄를 짓지 말라는 깨우침을 주기 위함입니다.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소금과도 같은 사랑을, 추억의 힘, 추억의 기쁨, 추억의 향기, 희망과 꿈을 고이 지니고 서로 평화롭게 살라는 것입니다. 제1독서의 야고보 사도의 부자에 대한 경고도 바로 탐욕에 눈멀어 죄짓지 말라는, 탐욕에서 당장 손을 떼라는, 재물을 쌓지 말고 나누라는 절박한 경고이자 명령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를 연상케 하는 야고보 사도의 말씀이 강렬합니다.
“여러분의 재물은 썩었고 옷은 좀 먹었습니다. 금과 은은 녹슬었으며 녹이 고발하는 증거가 되고 불처럼 살라버릴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재물을 쌓기만 했습니다. 일꾼들에게 주지 않고 가로챈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고, 일꾼들의 아우성이 만군의 주님 귀에 들어갔습니다.”
이 또한 회개의 촉구입니다. 정의롭게 재물을 나눔으로 죄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과거 추억의 빈약함에 과거의 잘못에 아파할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사랑의 추억을 축적해가는 일이 중요합니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입니다. 죄에서 완전히 벗어나 우보천리의 자세로 하루하루 사랑의 추억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행여나 어렸을 때 어머니 사랑 부족했다 원망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평생 어머니인 성모님이, 교회가 우리를 평생 사랑하고 위로하고 치유하고 격려합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사랑뿐이 답이 없습니다. 하루하루 한결같은 사랑의 맹훈련으로 사랑을 습관화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하루하루 날마다 평생 시편성무일도와 미사의 공동전례기도 사랑의 훈련입니다. 죄의 힘은 날로 약화되고 과거의 상처는 치유되며 추억의 힘, 추억의 기쁨, 추억의 향기가 풍요로운 인생으로 변모시켜 줄 것입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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