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7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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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5-23 | 조회수236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연중 제7주간 목요일] 마르 9,41-50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오늘 복음에는 보는 이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무시무시한 표현이 가득합니다. 'OO가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버려라'라는 식의 극단적인 표현이 그것이지요. 그런데 그보다 더 무서운 말씀은 정작 다른데 있습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여기서 '죄'란 욕망과 집착에 사로잡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잘못을 말하는데, 우리는 보통 자신이 죄를 짓지 않는데에는 신경을 많이 쓰기에, 각자의 구원에 큰 지장이 될 만한 큰 죄를 짓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또한 혹시 그런 죄를 짓더라도 고해성사를 통해 하루 빨리 그 죄를 씻고자 노력하지요. 그런데 내가 다른 이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드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내가 직접 남의 재물을 훔치지 않더라도, 필요 이상으로 욕심을 내어 다른 이에게 필요한 몫이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거나, 적극적으로 자비를 실천하지 않아서 가난하고 약한 이들이 '먹고 살기 위해' 불법을 저지를 수 밖에 없게 된다면, 그 행위나 상황 자체가 나를 깊은 멸망의 수렁으로, 영원한 지옥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요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부분을 가볍게 생각하여 잘 안 챙기는 이들이 많기에, 그러면서도 '난 죄 없다'고 착각하며 사는 이들이 많기에, 우리에게는 이 말씀이 더 무서운 경고가 되는 겁니다.
예수님은 굉장히 극단적이고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표현들을 사용하시면서까지 '죄의 뿌리' 자체를 뽑아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그래서 죄의 뿌리가 된다면 그것이 나의 소중한 지체라 할지라도 뽑아 버리고 잘라 버리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죄를 짓는게 정말 손 때문이고 발 때문일까요? 아닐 겁니다. 그 손과 발을 생각 없이 제 멋대로 휘두르는 '마음'이 문제이지요. 그렇기에 중요한 건 손과 발을 잘라내는 물리적 행위가 아니라, 그 정도로 비장한 각오로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죄의 뿌리인 탐욕과 집착을 끊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랑을 실천해야 할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물 한잔”의 나눔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이 말씀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관심’의 차원입니다. 누군가에게 ‘물 한 잔’을 챙겨주기 위해서는 먼저 이웃 형제 자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그의 상태가 어떤지, 그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아야 제대로 베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혀 목 마르지 않은데, 이런 저런 이유로 지금은 물을 마시면 안되는데 그런 사람에게 막무가내로 ‘물 한 잔’을 건넨다고 해서 그것이 주님께서 강조하시는 사랑의 실천이 될 수는 없는 겁니다.
둘째는 '여유', 즉 사랑을 실천하는 동력의 차원입니다. 우리는 보통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면, 자선을 베풀라고 하면 '여유'를 따집니다. 나는 가진게 별로 없어서, 지금은 여유가 없어서, 나 살기에도 빠듯한 형편이라 못한다고 핑계를 대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라고 하신 사랑은 '겨우' 물 한 잔 입니다. 아무리 가난해도, 아무리 삶이 팍팍해도 '물 한 잔' 베풀 여력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요한 건 물질적 여유가 아니라, 그런 여유가 있어야만 베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우리의 '마음자세'이지요. 예수님은 바로 그 점을 지적하십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과 자선의 실천이 나에게 별 가치 없고 딱히 필요 없는 것을 처분하듯 내던지는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지역은 팔레스티나, 즉 건조한 사막 지역입니다. 그런 곳에서 '물 한 잔'이 지니는 가치는 결코 가볍지 않지요. 그런 점에서 사랑과 자선은 나에게도 소중하고 귀한 것을 나누는 행위로 드러나야 합니다.
셋째는 그리스도, 즉 사랑과 자선을 실천하는 '이유'의 차원입니다. 우리가 '물 한 잔'이라는 사랑과 자선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나에게 잘 해 주어서가 아니라, 그가 나랑 친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과 자선을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살면서 만나는 모든 이를 주님께서 특별한 목적과 소명을 맡겨 나에게 보내주신 귀한 손님이자 사자로 여기며 마음을 다해 그들을 섬겨야 합니다. 그들을 섬기는 것은 곧 그들을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고, 그 사랑의 섬김은 나의 구원에 아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매우 중요한 일이 됩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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