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연중 제7주간 금요일: 마르코 10, 1 ~ 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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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기승 | 작성일2024-05-23 | 조회수206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10,6.9) 우리나라가 당면한 미래 문제들이 참으로 많지만, 그중에서도 인구 감소와 출산율 저하입니다. 근본 요인은 바로 젊은 세대가 예전과 달리 결혼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제 주변에도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긴 조카들과 아는 분들의 자녀들도 참 많습니다. 2023년 8월 말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의 의식변화'에 따르면, 19∼34세 청년 가운데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이 좋다, 고 답한 비중은 지난해 기준 36.4%였습니다.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여성의 비율은 28.0%에 불과했습니다. 남성 43.8%가 결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결혼하려고 하지 않는 주된 이유로 '결혼 자금 부족'(33.7%)을 가장 많이 꼽았습니다. 이어 '결혼의 필요성을 못 느낌'(17.3%), '출산과 양육 부담'(11.0%) 등의 순이었습니다. 성별로 보면 남성은 '결혼 자금 부족'을 꼽은 비중(40.9%)이 월등히 높았습니다. 여성의 경우 금전적인 이유(26.4%) 못지않게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23.7%) 결혼하지 않으려 한다고 답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한 결혼 적령기를 맞는 청년 2명 중 1명 이상 (53.5%)이 결혼을 한다고 해도 자녀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지 않은 청년들의 생각을 들어보면 다양한 이유가 많더군요. 첫째로, 사회 문화적인 변화가 결혼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성들의 활발한 경제 활동으로 경제적 자립 여지가 넓어지면서, 결혼 전에 직업을 선택하고 경력을 쌓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늦추거나, 결혼하지 않는 경우가 늘어난 것입니다. 둘째로, 결혼에 대한 인식이 변했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결혼이 일종의 사회적 의무로 여겨졌지만, 현재에는 개인의 선택으로 보는 추세입니다. 과거에는 결혼과 가정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강하였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셋째로 경제적인 부담이 증대되어 결혼에 대한 낭만이나 관심이 거의 없어졌다는 점입니다. 많은 청년이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태 (=아파트 값과 전세비 상승)에서 결혼하기 어려워졌고, 결혼 비용 부담 금액이 상승한 이유에서 결혼을 미루거나 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넷째로 취미나 여가 활동의 활성화입니다. 청년들은 과거 기성세대와 달리 취미나 여가 활동을 중요시하고, 많은 청년이 자유로운 생활을 추구하며, 결혼을 필수적인 선택사항으로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섯째로 연애 패턴의 변화입니다. 연애의 패턴이 과거와 달리 다양해졌습니다. 기존의 고정적인 연애 패턴에서 벗어나고, 다양한 형태의 연애를 즐기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러한 연애 패턴으로 인해 결혼을 미루거나 하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가수 ‘김연자’가 불러 유행했던 노래, ‘아모르파티’의 영향으로 다들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 가슴이 뛰는 대로 하면 돼> 라고 큰 소리로 합창합니다. 농담이지만, 출산율을 높이려면 나라에서 이 노래 금지해야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아참, 이런 주장은 ’순수 예술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죠. 미안합니다. 김연자씨) 문제는 이런 결혼관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는 가톨릭 혼인교리와 가르침이 얼마나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가톨릭 청년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교회는 심각하게 숙고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일원론적인 세상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가톨릭 혼인교리가 다원화된 세상에서 혼인을 앞둔 가톨릭 젊은이들이, 가톨릭 혼인의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잘 아시는 것처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10,7) 라는 말씀이 바로 가톨릭 혼인의 특징을 담고 있습니다. 곧 교회법 규정에 따라 합법적이고 유효하게 이뤄진 혼인의 끈은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결코 풀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이를 교회 혼인의 첫째가는 특성인 ‘혼인의 불가해소성’입니다. 가톨릭 혼인의 다른 특징은 ‘혼인의 단일성’입니다. 즉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 곧 일부일처여야 하며, 한 남자가 여러 여자와 함께 살거나 반대로 한 여자가 여러 남자와 함께 사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혼인의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은 바로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 예수님 말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남녀의 결합으로 이뤄지는 혼인은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으로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을 특징으로 하는 가톨릭 혼인은 단순한 축복이 아니라 성사, 곧 하느님 은총의 표지라는 것입니다. 혼인 생활 자체가 성사이고, 따라서 혼인 성사는 일회적이 아니라 부부의 연이 끝날 때까지 지속됩니다. 혼인의 유대가 이렇듯이 깊고 부부 사랑이 이토록 강하기에 교회는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에 비유해 왔습니다.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을 바쳐 신부인 교회를 사랑하시며, 신부인 교회는 한결같은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그분을 증언합니다. 혼인 성사 생활을 시작하는 부부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이런 사랑의 관계를 평생 지속하며 살아가야 할 소명을 받은 것입니다. 이렇게 심오한 혼인 곧 결혼생활이건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느님과 가족들 앞에서 두 사람이 약속, 서약도 희석되어 가기 마련입니다. 그 요인은 서로에 대한 이해 부족이겠지만 사실 자신에 대한 이해 부족과 혼인의 참된 가치에 대한 몰이해에서 기인한다고 봅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유일한 존재이고 그에 따라 가치관(=세계관, 종교관 등)의 차이, 태어난 가족과 환경의 차이, 성격과 성의 차이를 바탕으로 부부가 물리적인 일심동체 차원이 아니라 화학적 융합을 이루어 ‘한몸 한마음’을 이루어 나가지 못하면, 함께 살면서 배우자의 인간적인 약점이나 성격 차이의 노출로 인한 갈등과 실망에서 흔히 말하는 결혼 지옥의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신앙심도 없고 부모의 뜻을 거절하지 못하고 성당에서 혼인은 했지만, 인스탄트식 문화에 익숙한 젊은 부부들이 문제 직면해서 해결할 성숙도 부족하다 보니 인내하고 용서하기보다는 이겨내지 못하고 쉬운 방법을 찾게 되다 보니 이혼율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사회적 인식 또한 예전과 같지 않다 보니 쉽게 이혼을 결정하게 된다고 봅니다. 교회는 이혼의 근본적인 원인은 하느님 중심의 혼인관이 사라지고 사람 중심 곧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삶 때문에 이혼율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삶에서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말처럼 이혼 역시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그러기에 저는 교회법이 허용할 수 있는 한 이혼은 절대 불가능하다고만 압박하고 강요하기보다 헤어질 결심을 하고 실행하려는 부부에게 앙심과 원한을 품지 않고 헤어지게 해 줄 길을 모색하고, 실패했다가 다시 인연을 만나 결합하려고 하는 부부들에겐 함께 살 수 있도록 길과 문을 열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법 이전에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기본인 구원 상태는 행복 여부에 달려 있고. 혼인도 행복하기 위한 하느님의 초대라고 봅니다. 이는 수도원에서 나가는 형제들을 보면서 저의 시선의 변화입니다. 입회도 퇴회도 그가 참으로 행복하기 위한 결심이고 결정이라면 그 모든 일을 하느님께서는 받아들이실 거라고 저는 이제 믿습니다. “주님, 저희에게 완고한 마음을 없이 하여 주시고 당신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마음을 열어 주십시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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