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10,15)
우리 모두 다 어린이였습니다. 그런데 혹시 ‘어린이’의 의미를 아십니까? 사전에 보면 어린이는 나이가 적은 아이, 라고 규정되어 있더군요. 다른 관점, 곧 ‘늙은이’, ‘젊은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나이가 적은 어린아이도 ‘어린이’라고 부르면서 다른 세대와 대등하게 격상시킨 인격체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1923년 「어린이」 잡지 창간호 처음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죄 없고 허물없는 평화롭고 자유로운 한울나라! 그것은 우리 어린이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어느 때까지든지 이 한울나라를 더럽히지 말아야 할 것이며,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이 모다 이 깨끗한 나라에서 살게 되도록 우리의 나라를 넓혀가야 할 것입니다.』 이 창간사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매우 비슷합니다. 「어린이」 잡지를 창간한 취지가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10,14) 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착안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린이를 귀하게 여긴 예수님의 가르침을 소파 방정환 선생은 우리 민족의 희망인 어린이가 어린이답게 성장하는 세상과 사회를 조성하자는 의도로 제언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이 땅을 살아갈 모든 이가,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어린이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더욱 깊이 깨닫고 실천하면서 어린이들과 같이 되자고 당부하신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오늘 복음에 앞서, 마르코 9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악령 들린 어린아이를 치유하신 것뿐만 아니라 제자들끼리 길에서 누가 더 큰 사람인가 하는 문제로 다툰 제자들에게 보고 깨달으란 의도에서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껴안으시며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9,37)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도 이런 일련의 일과 가르침은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갔을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 가실 곳이 어디든지 그 소문이 먼저 가 닿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의 배경이 되는 유다와 요르단강 건너편에도 이미 알려졌나 봅니다. 아마도 이런 경이로운 소문이 알려져, 마침내 자기 동네에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여보게 소문 들었나? 예수님이 우리 동네에 오셨다네 그려.’ 그래서 “군중이 다시 그분께 모여들었다.”(10,1) 라고 전합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어린이의 특성 중 하나가 바로 호기심 아닙니까? 아마도 그곳엔 단지 어른들만 모여들지 않았겠지요. 분명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사랑하신다는 소문 즉,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사랑하세요. 예수님은 어린이를 껴안아 주시고 축복해 주는 것을 좋아하신다는 소문을 들었기에,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의 축복을 받게 해주려고 기를 썼을 것입니다. 아마도 많은 부모가 서로 먼저 자기 자식들이 축복받게 하려고 하다 보니 서로 뒤엉겨 난장판이 되었나 봅니다. 그러자 결국에는 “제자들이 사람들을(=부모들을) 꾸짖었다.” (10,13) 라고, 분명하게 그 상황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 제자들의 반응을 저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지나치게 격한 반응을 보면서, 예수님은 마음이 몹시 언짢으셨습니다. 왜냐고요. 제자들은 언제나 당신이 하신 일과 가르침의 의도를 알아차려 처신하기보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듯’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에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분명 예수님은 화가 나셔서, “뭣들 하는 짓이냐? 내가 가버나움에서 가르친 것을 다 잊었느냐?”라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의 화난 목소리에 부모들도 그렇고 아이들까지도 모두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내 예수님은 언제 그랬냐는 듯, 부드럽게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10,14)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순간만큼, 제자들은 분명 어린이들과 같은 마음이나 처신은 아니었습니다. 지나치게 어른스러운 태도이며 행동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다시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10,15) 라고 제자들을 향해 직설적으로 언급하시고, 명확하게 알아듣고 깨닫도록 말씀하십니다. 교회 안의 모든 어른은 마음에 새겨 간직하고, 잊지 않고 살아야 합니다. 때론 자녀를 둔 부모들이 불평하고 하소연하잖아요. 다른 아이들이나 어른들 앞에서 야단치고 호통치는 신부님을 보면서, 애들 주일미사에 보내고 싶지 않다고. 물론 아이의 부주의와 잘못이긴 하지만 때론 사제의 지나치게 격한 반응이, 복음의 제자들과 뭐가 다릅니까?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예수님은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 (10, 16) 얼마나 아름답고 경건한 광경이며 축복 넘치는 자리입니까? 바로 이 순간, 이 자리가 바로 하느님의 나라이며 교회의 참모습입니다. 어린이들은 단지 사랑한다는 말 이전에 자신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도록 표현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랑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어린아이가 되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아버지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철부지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복음환호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