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나해]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삼위일체가 이해되지 않는다면 진짜 세례를 받은 것이 아 ... | |||
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5-26 | 조회수252 | 추천수6 | 반대(0) 신고 |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나해] 마태 28,16-20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흔히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라고 합니다. 평생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존재가 ‘한 마음’이 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자아’라는 장벽을 넘어 상대방을 향해 나아가려면 크나큰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기심’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다른 사람에게 맞춰주려면 대단한 양보와 희생이 필요합니다.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사랑이 있다면 가능합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서로 다른 두 마음이 하나로 모이고, 그렇게 사랑이라는 굳건한 유대로 맺어진 운명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누군가와 진정한 일치를 이루는 과정 안에서 우리는 점점 완성되어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내가 사랑받고자 하는 그대로 남을 사랑함으로써 그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과 참된 일치를 이루어야 합니다.
오늘은 하느님께서 이루고 계시는 사랑의 일치를 기념하고 묵상하는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위격으로는 서로 다르시지만, 그 다름을 극복하고 온전히 일치되어 계신 ‘한 분 하느님’이시라는 겁니다. 서로의 다름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사랑’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서로를 사랑하시기에 자신과 다른 부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수용할 수 있는 겁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굳이 세 위격으로 계시는 이유도 바로 사랑입니다. 우리를 보다 구체적으로, 보다 다양하게, 보다 깊이 사랑하시기 위해 서로의 역할과 임무를 구분하여 각각 현존하시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하느님께서 삼위일체시다’라는 말은 곧 하느님께서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뜻이 됩니다.
성부 하느님은 자애가 넘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잘못하더라도 뉘우치고 당신께 돌아가면 언제나 용서해주시고 품어주시는 분이십니다. 혹여 우리가 당신 뜻에서 벗어나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당신 천사를 보내시어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성자 예수님은 우리를 참된 사랑으로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를 분명히 알려주셨습니다. 또한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시는 희생으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완전한 사랑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범을 충실히 따르면 그분 사랑 안에 깊이 머무르게 됩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며 그런 삶이 주는 기쁨을 온전히 맛보도록 이끄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으로 섬기고 그 사랑의 힘으로 그분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죄를 적극적으로 피하여 하느님 사랑 안에 영원히 머무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사랑으로 한 몸을 이루고 계시는 이유는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를 그 사랑의 일치 안으로 초대하시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느님께 마음을 열어 그분을 ‘아빠, 아버지’로 여기며 따르게 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고통과 시련을 감당할 힘과 용기를 주심으로써, 우리로하여금 성자 그리스도의 친구이자 형제가 되게 하십니다. 어려울 때 끝까지 함께 있어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입니다. 게다가 십자가마저 기꺼이 함께 져주는 친구라면 피를 나눈 형제와도 같지요. 이처럼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우리는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는 그분께 사랑받는 ‘자녀’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서는 하느님을 한 아버지로 모시며 그분께서 주시는 은총을 함께 받는 ‘형제’가 되지요. 그렇게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이루고 계신 일치 안에 우리도 참여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고 따르는 우리들하고만 일치를 이루기를 바라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신앙이라는 울타리 바깥에 있는 양들까지 참된 생명의 땅으로 데리고 가기를 바라시는 참되고 선한 목자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분과 사랑으로 일치해 계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은 당신께서 창조하시어 아드님에게 맡기신 사람들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되살리시어 구원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 제자인 우리에게 ‘복음선포’라는 중대한 사명을 맡겨 파견하십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고 떠들면서 사람들을 겁박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말로만 떠들고 지식으로만 가르쳐서 사람들의 마음에 부담을 지우라는 것도 아닙니다. 행동과 삶으로 주님 뜻을 드러내어 아직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이 그분께 관심을 갖고 다가가게 하며, 더 나아가 그들이 세례를 받고 우리와 같은 믿음을 갖게 하시려는 겁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온 세상 모든 사람이 그 믿음을 통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안에서 참된 일치를 이루며 기쁘게 살아가기를 바라시기에, 우리를 그 일치의 ‘마중물’이 되라고 보내시는 거지요.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인격적인 친교를 맺게 됩니다. 그리고 그 친교를 통해 성부 성자 성령께서 우리 영혼 안에 현존하시며 활동하시게 됩니다. 그런 세 분의 활동에 힘입어 각자가 받은 사랑의 소명을 완성해가는 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신앙생활이지요. 신앙생활의 시작이자 마침이 바로 ‘성호경’입니다. 이마에 손을 얹으면서 나에게 생명을 주시어 세상에 보내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가슴에 손을 얹으면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죽음에 이르기까지 당신 자신을 낮추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왼쪽 가슴에 손을 얹으면서 나로 하여금 주님의 뜻과 계명에 따라 올바르게 살도록 이끄시는 성령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른쪽 가슴에 손을 얹으면서 그 모든 사랑의 행위가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즉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려는 그분들의 뜻에 따라 이루어졌음을 되새깁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하는 모든 활동을 성호경으로 시작하고 성호경으로 마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자신이 하는 일이 하느님의 뜻에 일치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동시에 자신이 그 모든 일을 통하여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사랑으로 일치하기를 바라는 소망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중요한 의지와 소망을 되새기는 것이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을 기념하는 의미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