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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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5-26 | 조회수228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주위를 둘러보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에
놀랐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마르 10,21-27)”
1)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영원한 생명을 받는 방법을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십계명을 잘 지키면
된다고 대답하셨습니다(마르 10,17-19).
그러자 그 사람은, 어려서부터 십계명을 다 지켜 왔다고
말하는데(마르 10,20), 그의 말에는 십계명만으로는 무엇인가
좀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마태 19,20).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신 것은, 십계명을 다 잘
지켜 왔다는 그의 말을 인정하신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가
평소에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음을 인정하신다는 뜻이기도
하고, 영원한 생명을 받기를 바라는 그의 지향이 올바른
것임을 인정하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라는 말씀은,
그의 ‘십계명 실천’에 부족한 점이 있다는 뜻입니다.
<전반적으로 잘하고 있지만 원하는 대로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그 부족한 것 하나를 채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그 부족한 것 하나를 채우지 않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가 됩니다.
그렇다면, 그 ‘부족한 것 하나’는, 그가 실행해야 할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큰 일’입니다.>
2)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라는
말씀은, 그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재물에 대한 애착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임을 나타냅니다.
“가진 것을 팔아”는, 재물을 모두 포기하라는 뜻입니다.
재물 자체를 버리는 것이 재물에 대한 애착심을 버리는 방법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재물에 대한 애착심을 버릴 수만 있다면 재물을 그냥
가지고 있어도 상관없지 않은가?” 라고 물을 수도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게 대단히
어려운 일,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라는 말씀은,
재물을 그냥 포기하고 버리기만 하는 것은 의미가 없고,
‘버림’은 ‘사랑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 말씀은 ‘사랑의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세속 재물에 대한 사랑을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재물에 대한 애착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과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 것은, ‘같은 것’입니다.>
여기서 ‘부족하다.’ 라는 말은, 사랑을 아주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안 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즉 그 사람의 사랑은, 두 방향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재물에 대한 사랑으로......
그렇게 사랑이 갈라져 있는 상태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도 없습니다.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는 “네가 원하는
대로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라는 말씀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은 바로 당신이시라는 것을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3) 그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간 것은, 재물에 대한 애착심을(또는 재물을) 버릴 수도
없었고, 영원한 생명을 포기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둘 가운데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슬펐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이 겪는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정말로 둘 다 가질 수는 없는가? 꼭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가?
이유는 단순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만’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들어가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는, 하느님이 아닌 것들도 사랑하는 사람은
들어갈 수 없는 나라입니다.>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는, 뜻으로는,
“재물에 대한 애착심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입니다.
부자들만 그렇게 ‘재물에 대한 애착심’이 큰 것은 아닙니다.
가난해도 재물에 대한 애착심이 큰 경우가 많습니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라는 말씀은, 재물에 대한 애착심을
버리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정말로 어려운 일이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라는 말씀의 ‘부자’는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재물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재물을 섬기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낙타와 바늘귀’에 관한 말씀은, 재물을 섬기는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
아니라, ‘불가능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라는 말씀은,
재물에 대한 애착심을 완전히 버리고 ‘하느님만’ 사랑한다면,
낙타 같은 사람도 바늘귀 같은 하느님 나라의 문을
통과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연중 제8주간 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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