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이영근 신부님_2024년 5월 29일 수요일 ·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 |||
---|---|---|---|---|
이전글 | 양승국 신부님_주님을 섬기는 것을 어찌 사교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 |||
다음글 | 반영억 신부님_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순교자 기념일(요한 12,24-28) | |||
작성자최원석
![]() ![]() |
작성일2024-05-29 | 조회수113 | 추천수2 |
반대(0)
![]() |
제1독서 ▥ 마카베오기 하권의 말씀 6,18.21.24-31
그 무렵 18 매우 뛰어난 율법 학자들 가운데 엘아자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먹어도 괜찮은 고기를 직접 준비하여 가지고 와서 임금의 명령대로 이교 제사 음식을 먹는 체하라고 권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오늘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그 동료순교자들 기념일입니다. 오늘은 그들 중 5위(이일언, 신태보, 이태권, 정태봉, 김대권)가 1839년 전라도 전주 숲정이에서 순교한 날입니다.
이들은 한국 초기 교회의 순교자들로서, 시대로는 오히려 103위 성인보다도 앞서 사셨던 분들입니다.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종께서는 병인박해 순교자 103위를 시성했으나, 선교사들이 한국에 입국하기 전에 교회를 일궈낸 이들이 누락되었다가, 2014년 프란치스코 교종에 의해 신해박해(1791)부터 병인박해(1866)까지의 124위 순교자들이 시복된 것입니다.
그들 중 124위 중 최연소자는 12세로 이봉금 순교자이며, 최고령자는 75세로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의 증조부인 김진후 순교자입니다. 전라도 진산 출신으로 1790년 베이징의 구베아 주교가 조선교회 제사 금지령을 내리자 신주를 불사르고 모친상을 천주교식으로 치렀다가 체포령을 내려지자 자수했습니다. 1791년 12월 8일에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구베아 주교의 파견으로 조선인으로 변장하고 1794년 입국했습니다. 강완숙 집에 숨어 지내면서 성사를 집전해 6년 만에 조선교회 신자 수를 1만 명으로 늘리는 데 큰 공로를 세웠습니다. 신유박해 때 귀국을 결심했다가 순교하기로 마음먹고 자수했고, 새남터에서 효수형에 처해졌습니다. 한글 교리서 <주교요지> 2권을 집필해 주문모 신부의 인가를 얻어 교우들에게 보급했고, 평신도단체 '명도회' 초대 회장을 지내다 1801년 순교했습니다. 곧 목숨을 바쳐 섬기는 순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섬김'이야말로 곧 '순교'입니다. '섬김'의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일상 안에서도 '섬김의 순교'를 통하여 복음이 증거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요한 12,26) 주님! 함께 있는 이를 존중하게 하소서! 함께 있는 이를 업신여기지 않게 하소서! 당신께서 함께 있는 저를 결코 무시하지 않으시듯, 저 역시 곁에 있는 형제를 존중하고, 함께 계신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섬김으로 당신을 증거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