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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8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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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4-05-29 조회수479 추천수5 반대(0)

주일학교 아이들이 부르는 성가 중에 예수님의 사랑 신기하고 놀라워가 있습니다. 가사는 이렇습니다. “예수님의 사랑 신기하고 놀라워/ 예수님의 사랑 신기하고 놀라워/ 예수님의 사랑 신기하고 놀라워/ 오 크신 사랑/ 하늘 그보다 높고/ 바다 그보다 깊고/ 우주 그보다 넓은/ 오 크신 사랑최근 책을 읽으면서 저는 하느님의 사랑이 신기하고 놀랍다는 걸 새삼스럽게 체험했습니다. ‘시간에 묻힌 한 사제의 삶이라는 책에서 책의 저자인 신부님은 1963년 군 제대 후에 이민을 고민하다가 여의치 않자, 성당의 신부님께 면담을 청하였습니다. 당시 젊은이의 고민은 3가지였습니다. 계속 이민 절차를 밟으며 기다리는 것, 직장을 구하고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는 것, 신학교에 들어가 사제가 되는 거라고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청년의 이야기를 듣다가 청년의 고향과 깊은 인연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고향이 평양인데 징집되어 한국 전쟁에 끌려왔고, 포로가 되어 거제도 수용소에 있다가 석방되었다고 합니다. 석방되고 거처를 정한 곳이 청년의 고향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부님은 그곳 정 부잣집에서 일을 도와주었는데 그 집 아들과 친분이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젊은이는 그 아들이 자신의 둘째 형이라고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청년에게 안수해 주었고, 하느님께서 청년이 가야 할 길을 정해 주시기를 청하였습니다. 청년은 사제가 되기로 결심하였고, 사제가 되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깊이 고민하던 젊은이의 갈망을 하느님께서는 신비하고 놀라운 방법으로 채워주셨습니다.

 

젊은이가 신부님께 면담했든 1963년은 제가 태어나든 해입니다. 20년 후에 저는 그 신부님께 면담하였습니다. 저는 젊은이처럼 3가지를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교사나 군인이 되고 싶었지만, 사제가 되는 것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신학교에 가겠다는 친구도 있었고, 5대째 천주교를 믿는 집안에서 태어난 영향도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성적표를 가져오라고 하셨고, 당시 잠시 쉬고 있던 아버지가 성당에 나오면 신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추천서를 써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신부님과 면담을 한 후에, 다시금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최 씨에, 곱슬머리에, 옥니를 가진 사람은 고집이 세다고 하는데, 신부님이 그 세 가지를 다 갖추었습니다. 신부님은 고집이 세시고, 강직하였지만 속 깊은 정이 있었습니다. 제가 첫 본당 신부가 되었을 때, 먼 길을 마다치 않고 오셨습니다. 임진강 매운탕을 드시면서 본당 사제로 잘 지낼 수 있도록 격려해 주었습니다. 본당 형편이 어렵다는 걸 아시고, 용돈도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신기하고 놀라운 것인지, 저는 2007년 신부님께서 분가한 성당의 본당 신부가 되었습니다. 신부님은 제가 신학교에 들어갈 수 있도록 추천서를 써 주었고, 첫 본당 신부가 되었을 때는 직접 찾아와서 격려해 주었고, 원로 사목자가 되어 은퇴하실 때는 신부님께서 분가한 성당의 본당 신부가 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저는 샌프란시스코에 계시는 신부님께 전화했습니다. 신부님을 사제의 길로 인도해 준 신부님이 저의 아버지 신부님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2009년 신부님은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지만, 이렇게 제게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주십니다.

 

인생은 흑자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게 살았어도, 고통과 슬픔이 가득한 삶이라 해도 인생은 흑자라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대가를 지급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르티매오는 주님의 은총으로 치유 받아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정말 좋은 일입니다. 바르티매오는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가고 싶은 곳도 많았을 것이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걸 뒤로 하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모든 걸 볼 수 있지만 이제 한 분 예수님만 바라보면 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읽은 글인데, 어느 어두운 밤에 한 소경이 초롱불을 밝혀서 다녔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당신은 볼 수도 없는데 왜 그렇게 다니느냐고 하니까, 그 소경은 하는 말이 나는 소경이지만,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이 초롱불을 보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래야 자신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는 무심코 지나간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는 뭔가를 보려고 하고, 뭔가를 찾으려고 하지만, 사실 우리 자신이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위로의 빛, 사랑의 빛, 희망의 빛을 비추어야 하는 것이 아닐지 생각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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