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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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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글 오늘의 묵상 (05.29.수) 한상우 신부님  
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5-29 조회수239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 독서에서 엘아자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나이도 많고 풍채도 훌륭하였고 그러한 그에게 사람들이 강제로 입을 벌리고 돼지고기를 먹이려 하였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살아 보려고 내가 취한 가장된 행동을 보고 우리 유대 민족은 나 때문에 잘못된 길로 빠지고, 늙은이에게는 오욕과 치욕만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은 인간의 벌을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살아서나 죽어서나 전능하신 분의 손길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거룩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주님께서는, 내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

몸으로는 채찍질을 당하여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마음으로는 당신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이 고난을 달게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십니다." 라고 하며 그는 고결한 죽음을 맞이 합니다. 

 

이 사람의 말 중에서 저는 전능하신 분의 손길이라는 말에 더욱 고개를 숙이게 합니다. 그리고 그는 당신에 대한 경외심이라는 말을 남기고 죽어 갑니다. 

 

전능하신 분의 손길과 경외심을 고백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중심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있다면 아마 주님의 현존을 인식하고 그분의 말씀에 경외심, 하느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우리 나라 순교자들을 생각하면 아주 극한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 합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우리 어머님이 천주교 신자로서 우리 집안에 시집을 오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은 불교와 유교를 숭상하는 집이었습니다. 우리 할머님은 대종교를 믿으신 분이고요. 그래서 우리 어머님이 아주 싫은 존재셨습니다. 입으로 담기 어려운 말을 들으셔야 했고 그리고 식칼 혹은 갖은 도구들을 가지고 어머님을 괴롭히고 위협을 받으셨습니다. 이유는 천주교를 믿는 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저 같으면 이혼하고 다른 집으로 새 살림 차릴 법한데 어머님은 결혼이 천주님이 맺어 주신 것이라 하느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에 그 모진 고난을 감수하셨습니다. 그런데 할머님이 중풍이 걸리신 것입니다. 일어나시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님이 그 모질게 굴던 우리 할머님을 구하기 위하여서 레지오 마리에 단원 중에 침을 놓는 분이 계셨고 그분이 오셔서 우리 할머님을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레지오 단원들이 와서 기도를 올리고 그 과정 중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할머님은 모든 것을 버리고 천주교로 개종하셨고 선종하셨습니다. 모진 고난을 격으면서도 하느님을 두려워해서 끝까지 하느님을 바라보고 걸어갔던 어머님입니다. 

 

우리 집안이 나름 신앙을 바로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님의 믿음입니다. 어머님도 순교자 집안 자손입니다. 

 

이모와 외삼춘을 보면 세상에서 그렇게 물질적으로 잘 살지 못하셨습니다. 그런데 신앙 하나만큼은 중심에 확실히 모시고 살으신 분입니다. 서천이 우리 어머님 고향이신데 주일에 성당을 가려고 하면 걸어서 두시간은 걸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미사 참례 하기 위하여서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셔서 준비하시고 재일 고운 옷을 입고 성당을 가시는 모습은 신앙이란 이렇게 믿어야 하는 구나 라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모가 몇해전에 돌아가셨는데 그런데 그분도 배운것이라고는 별볼일 없으십니다. 그러나 성당에서 그 마음 순수하신 것은 대단한 분입니다. 마음 착하고 하느님 공경하는 마음은 참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마음에 항상 천주 공경하는 것이 우리 외가쪽 분들의 마음이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세상에 순교라는 말이 그대로 적용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수없이 많은 유혹과 악들로 인해 사람들은 많은 유혹을 받고 살아갑니다. 요즘 가장 큰 유혹은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말에 전혀 공감하지 않는다는 점, 앞에서 독서에서와 같이 하느님을 두려워서 나의 행동거지를 하느님을 중심으로 행동하는 마음이 없어져 가고 있습니다. 물질의 풍요는 존재하지만 그러나 영적으로 바라보아서는 참으로 사막과 같이 Dry합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한 것은 영적인 하느님의 현존에 이르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이르면 참 순결한 성인이 되고 성화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성화라는 말도 싫어 하는 현실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세상입니다.  

 

기도 많이 해야 하고 하느님의 도움을 많이 청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사람의 숨으로 이어지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하느님의 현존안에 있음을 말합니다. 나를 미워하고 하느님의 것을 받아들이고 온전히 의탁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사실 순교라는 것이 왜 일어나는가? 현실은 육적인 세상이기에 그것으로 계속 살아가다 보면 결국은 육으로 죽습니다. 영원한 생명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영원한 생명은 육적인 것을 버리고 영의 세계로 넘어가는 것이고 내가 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주님의 영이 머물면서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비움과 낮은 곳으로 나를 낮추는 것이 있어야 겠고 하느님을 내 중심으로 간직하고 살며 세상으로 부터 오는 필수적인 고통에 꿋꿋이 걸어가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분명한 것은 내가 이긴다는 주님의 말씀을 내 중심에 간직하고 걸어가야 겠습니다. 승리는 분명히 우리 주님에게 있습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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