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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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5-29 | 조회수216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 요한 12,24-26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수도회에 입회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수사가 있었습니다. 그 수사는 심한 고소공포증 때문에 등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산을 너무나 좋아하는 선배수사를 따라 자주 수도원 근처에 있는 산 정상까지 오르고는 했지요. 그런데 그 선배 수사는 산 정상에 오르면 버릇처럼 꼭 하는 행동이 하나 있었습니다. 보는 것 만으로도 아찔한 절벽 끝에 두 발로 버티고 서서 '아, 참 좋다!'라는 감탄사를 연발했던 것입니다. 젊은 수사는 그런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높은 곳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서 있을 수 있는지 그 비결이 참으로 궁금하기도 했지요. 그래서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선배 수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수사님, 벼랑 끝에 서 계시면 무섭지 않으세요? 혹시 밑으로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그러자 선배 수사는 그를 보고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허허, 이 친구야. 밑을 보지 말고 하늘을 봐야지."
참으로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진리입니다. 아무리 담대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라도 높은 곳에 올라가 계속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으면 두려운 마음이 생길 수 밖에 없지요. 그러나 하늘을 보면, 내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만 바라보고 집중하면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높은 곳에서 줄타기를 하는 곡예사들이 그러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런데 그것은 비단 줄타기를 할 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살다보면 주님의 뜻을 따른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의 비난이나 원망을 듣기도 하고, 심한 경우 물리적, 언어적, 정신적 폭력을 당하기도 하지요. 우리가 오늘 기념하는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또한 그런 상황을 겪었습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가혹한 박해로 인해 그동안 살면서 쌓아온 모든 것을 잃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위기를 맞았으면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주님의 뜻’을 따른 것입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땅이 아닌 '하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거나, 현세의 삶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나라, 그리고 그 나라에서 영원히 누리게 될 참된 행복의 삶에 집중했기에, 현재의 고통과 시련 앞에서도 흔들리거나 절망하지 않고 끝까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현재의 고통이 고통으로만 끝나지 않고, 참된 행복과 영원한 생명을 위한 자양분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밀알의 비유를 드시며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땅만 쳐다보며 살면, 시선이 현세의 삶에만 머물러 있으면, 당장의 이익은 지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더 중요하고 가치있는 것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하늘’을 쳐다보며 살면, 하느님 나라의 가치들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것을 삶 속에서 실천하면, 당장은 손해를 보거나 희생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더 근원적이고 소중한 것들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땅보다는 ‘하늘’을 보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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