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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수철 신부님_어떻게 살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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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6-01 조회수225 추천수8 반대(0) 신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무지(無知)에 대한 답은 예수 성심(聖心)뿐이다”

 

 

“하느님 내 하느님, 당신을 애틋이 찾나이다.

 내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 하나이다.

 물기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 이 몸은 당신이 그립나이다.”(시편63,2)

 

미사에 참석한 우리는 물론이고 오늘 기념하는 성 유스티노 순교자도 평생 이렇게 진리이신 주님을 목말라 찾았습니다. 지나고 보니 지난 성모성월 5월 어머니의 달은, 나라 사정과는 달리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의 참 아름다운 신록의 자연에 참 좋은 날씨의 연속이었습니다. 6월 달력을 여는 순간 예수성심성월이란 말마디가 참 반갑게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어머니의 달 5월 성모성월에 아드님의 달 6월 예수성심성월입니다. 예수성심이야 말로 우리의 참 희망이자 빛임을 깨닫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에 답은 저절로 나옵니다. 예수성심성월,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을 사는 것입니다. 예수성심의 사랑을, 즉 겸손한 사랑, 온유한 사랑, 지혜로운 사랑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지에 대한 궁극의 답도 예수성심뿐임을 깨닫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참으로 날마다 물어야 할 물음입니다. 어제 일간지 전문가의 다음 기사 내용이 더욱 이런 물음을 갖게 합니다.

 

“현 세계경제는 마치 병원에서 중환자가 산소 호흡기를 달고 억지로 수명을 연장하는 것과 같다. 이 상황에서는 그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묘수가 없다. 자연은 고갈되고 인구는 저출산, 고령화로 치닫는다. 이젠 ‘발상의 전환’이 답이다. ‘많이 먹고 많이 싸는’ 기존의 성장주의를 버리고, ‘조금 먹고 조금 싸는’ 대안 구조가 돌파구다.”

 

아마 예수님께서도 공감하실 것입니다. 지난 5월은 폭풍전의 고요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올 여름의 더위가 걱정됩니다. 이어지는 기사 내용입니다.

 

“지구온난화, 한가한 소리다. 지구열탕화가 맞는다. ‘가마솥 안 개구리’는 비유가 아닌 현실이다. 지구는 가마솥과 같이 달궈지고 있고, 폭염으로 사망한 사람은 2019년 기준 50만명에 이른다.”

 

이런 부정적 비관적 현실과 미래에 대한 진단이 우리의 사고의 전환, 발상의 전환, 참된 생태적 회개를 요구합니다. 그리하여 궁극의 길이자 진리이자 희망이자 빛이신 예수님을, 예수성심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날마다 새기는 다산의 문장 “다산 어른의 하루”라는 일력(日曆) 6월의 주제는 전미개오(轉迷開悟)입니다. 불교용어로 “껍질에 갇히지 말고 스스로의 중심을 세우라”라는 뜻입니다. 우리 말로 하면 무지의 껍질에서 벗어나 예수님 중심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재앙중의 재앙, 불행중의 불행이 삶의 중심 예수님을 잃는 것입니다. 6월 첫날 다산의 말씀도 좋습니다.

 

“인생의 시험은 매일 반복된다. 바로 어제 일으킨 분발심을 오늘도 계속할 있는 지에 대한 도전이다.”

작심삼일에 머물지 말고 한결같이 충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中)은 지극히 선한 것이고, 용(庸)은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지극히 선하면서 오래 할 수 있으면 중용(中庸)이다.”

어느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한결같이 올바른 상태의 중용의 지혜는 예수님은 물론 성 베네딕도의 지혜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권한을 문제 삼는 무지하고 사악한 이들과 지혜로운 예수님과의 대결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무지로 왜곡된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 원로들은 흡사 기득권에 찌든 타락한 종교지도자들을 보는 듯 합니다. 눈밝은 민초(民草)들은 예수님의 온갖 행적들은 하늘에서 온 것임을 알아채는 데 무지에 눈먼 종교 권력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지혜롭게도 요한의 세례를 예로 들면서 이들의 말문을 막아버립니다. 어느쪽도 대답할 수 없기에 이들이 “모른다”고 대답하자 예수님 역시 “모른다”로 답하심으로 논쟁을 끝냅니다. 무지한 자들과의 논쟁은 끝이 없고 오히려 유혹에 휘말릴수 있기에 이렇게 조기에 끝내는 것이 지혜입니다. 유다 사도의 가르침도 우리를 지혜롭게 하는 구도자의 자세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지극히 거룩한 믿음을 바탕으로 성장해 나아가십시오. 성령 안에서 기도하십시오.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십시오.”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예수성심의 자비와 지혜를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을 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의 모범이 오늘 기념미사를 봉헌하는 성 유스티노 순교자입니다. 성 유스티노는 2세기초 그리스 사람으로 사마리아 지방에서 태어났으며, 평생 지칠줄 모르는 열정으로 진리를 찾았던 구도자였습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만나야 비로소 해갈되는 영혼이요, 이를 위해 미사에 참석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성인은 스토아 철학,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피타고라스 철학, 플라톤 철학에 몰두하였지만 영혼의 허기는 여전할 뿐 만족할 수 없던중, 어느날 에페소의 바닷가를 걷던중 노인을 통해 예수님을 만났고 다음같이 고백합니다.

 

“나의 영혼은 즉시 끓어올랐고, 예언자들과 그리스도의 친구들에 대한 애정이 엄습해왔다. 그리고는 이것이야말로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유익하고 확실한 철학임을 깨닫게 되었다.”

 

철학들로부터 참 진리이신 예수님께로의 삶의 회개가 이뤄진 유스티노는 130년경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에 입교합니다. 성인이 그리스도교에 빠진 이유는 순교자들의 영웅적인 태도에 감동했기 때문입니다. 150년경 로마로 건너가 평신도 신학자로 그리스도교의 호교론을 가르치고 호교론 학파를 설립합니다. 성인은 2세기 호교론자들중 가장 뛰어난 신학자였고 대표적 저서로는 호교론과 트리폰과의 대화가 있습니다. 성인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열성적 방어와 반대파의 주장을 누르는 빼어난 논쟁 능력은 많은 적들을 낳게 되었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통치 시절인 165년 6명의 신자들과 함께 참수형의 순교를 당합니다. 

 

6월 예수성심성월 첫날을 여는, 평생 진리를 찾는 구도자로 살았던 성 유스티노의 예수님께 대한 순교의 사랑이 우리를 감동케 합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길이자 진리요 희망이자 생명이신 예수성심의 사랑뿐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예수성심의 사랑 속에 예닮의 여정에 항구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주님, 당신의 은총이 생명보다 낫기에,

 내 입술이 당신을 찬양하리이다.

 이 목숨 다하도록 당신을 찬양하리이다.”(시편63,4-5ㄱ).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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