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9주간 월요일,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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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글 |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 |||
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6-03 | 조회수219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연중 제9주간 월요일,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 마르 12,1-12 “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어진 사람은 재물로 몸을 일으키고 어질지 못한 사람은 몸으로 재물을 일으킨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돈을 더 많이 벌어보겠다고 ‘돈 돈 돈’거리며 돈의 뒤를 따라가면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할 뿐 아니라 돈의 노예가 되고 맙니다. 반면 돈이 나를 따라오게 만들면, 돈 자체에 집착하거나 연연하지 않고 그 돈을 내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그래서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는 수단으로 잘 활용하면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벌게 되지요. 그런데 오늘 복음 속 비유에 나오는 소작인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더 많은 포도를 가지려고 했고, 그 포도를 통해 더 많은 돈을 벌려고만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그들의 마음 속 탐욕은 선과 악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커졌고, 돈을 더 갖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타락해 버렸습니다.
주인은 그들이 포도밭을 가꾸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소작인들이 자기 눈치를 보느라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그들에게 포도밭 관리에 관한 전권을 맡기고 멀리 떠나주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선한 의도로 한 그 배려가 오히려 소작인들이 더 큰 욕심을 부리도록 부추기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인이 눈에 보이지 않자 자기들이 주인이 되려는 헛된 욕망을 품은 겁니다. 그런 모습은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지요. 이 세상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셔서 우리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스스로가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함부로 다루며 제 욕심 채우기에만 급급할 뿐, 하느님께서 세상을 왜 맡기셨는지,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가꾸고 관리해야 하는지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인에게 바쳐야 할 소출의 일부를 제대로 바치지 않는 소작인의 모습이지요.
포도밭에서 풍성한 소출을 얻는 과정에서 소작인들이 기여한 바는 겨우 ‘숟가락 하나 얹은’ 수준입니다. 주인의 수고와 노력, 그리고 세심한 배려가 아니었다면 결코 그런 소출을 얻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 주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그 마음으로 세상이라는 포도밭을 잘 이용한 정당한 대가를 그분께 내어드려야 마땅합니다. 겨우 숟가락 하나 얹었을 뿐인 자기 처지를 망각하고, 밥상 전체를 자기가 차지하겠다고 욕심을 부리며 폭력을 휘두르면 그는 더 이상 ‘소작인’이 아니라 ‘강도’가 되어 버립니다. 소작인으로서 누리던 모든 좋은 것들을 다 잃고 쫓겨나는 참으로 비참한 처지가 되는 겁니다.
주인이 자기 아들을 포도밭에 보낸 것은 소작인들을 처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마음을 고쳐먹고 잘못을 바로잡도록 타이르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늦게라도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여 하느님 뜻에 맞는 올바른 길을 걷도록 이끄시기 위해서, 그리하여 우리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지막으로”라는 말입니다. 주인은 “마지막으로” 소작인들에게 자기 아들을 보냈습니다. 소작인들이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준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신 것도 우리가 회개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제 욕심을 채우는데에만 급급하여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따르기를 거부한다면, ‘사고 팔고 심고 짓고 하는’ 세상의 일에만 신경쓰느라 회개를 자꾸만 나중으로 미룬다면, 하느님의 참된 자녀가 되어 그분과 함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하느님 나라에서 쫓겨나는 비참한 처지가 될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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