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랑(信仰)의 出發點은 하느님. (마르12,28-3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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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종업로마노 | 작성일2024-06-05 | 조회수174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연중 제9주간 목요일] 사랑(信仰)의 出發點은 하느님. (마르12,28-34) 28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30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1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 둘째는 이것이다. 병행복음- 마태33,39에도 ‘둘째도 *이와 같다’.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은 ‘같은 것이다’라는 말씀이다.
(갈라5,14) 14 사실 모든 율법은 한 계명으로 요약됩니다.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계명입니다. =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야고2,8-9) 8 여러분이 참으로 성경에 따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지고한 법을 이행하면,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9 *그러나 사람을 차별하면 죄를 짓는 것으로, 여러분은 율법에 따라 범법자로 선고를 받습니다. = 인간의 사랑을 차별적이다. 그래서 그 누구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먼저 ‘차별이 없으시고 원수(죄인)까지 사랑하신, 그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 주신’ 그 하느님의 사랑을 알아야 한다. 죄인들을 위해 당신 외아들 예수를 속죄 제물로 내주신 하느님, 그 사랑을 알아야(받아야)한다. 그랬을 때 우리의 마음, 목숨, 정신, 힘을 다해 하느님을 나의 주님으로 사랑할 수 있다.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분의 뜻을 사랑하는 것이다. 곧 우리 구원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기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하느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해주는 것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한 계명인 것이다. 인간의 지각(知覺)으로 깨달을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성령의 이끄심으로 깨달아, 내가 먼저 받고, 그 하늘의 사랑(아가페)을 이웃과 나누는 그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시다.
이웃을 사랑하려면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가장 큰 두 가지 계명,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모두 나를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잘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자신에게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하느님을 향한 열정을 지니고 있으며,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가?’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사랑 받기 위하여 태어난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내가 하느님께서 흙 먼지로 손수 빚어 만드시고, 숨과 영을 불어넣어 주신 소중한 존재임을 알고 있습니까? 나를 사랑할 줄 모르는데, 나에게 하느님을 향한 열정이 불타오를 수 있을까요?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출발점,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소중한 자녀인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상- = 그런데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 흙의 먼지에 불과한 그 없음의 존재가 하느님의 숨을 받아 생명체가 된 것, 소중한 존재 맞다. 그러나 그 생명체는 다시 흙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그 흙, 땅의 존재들을 하늘의 존재, 곧 당신의 영원한 자녀로 재창조하시기 위해 아들 예수님을 이 흙(어둠)의 세상의 빛(생명)으로 보내신 것이다. 빛, 하늘의 존재 예수께서 어둠인 이 세상에 육을 입고 오심, 그 자체가 신의 죽음의 시작이다. 그 어둠, 그 없음의 존재들을 빛, 있음의 존재로 만드시기 위해 희생하신, 그것이 십자가의 희생, 대속, 죽음, 사랑인 것이다.
(요한1,9-12)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0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1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 하느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실 속죄 제물로 보내신 예수님을 생명의 빛으로, 구원의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의 피( 죽음)로 모든 죄, 더러운 양심까지 깨끗하게 씻기게 하는 것,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히브10,10.22참조) 그 하느님의 뜻, 그분의 약속,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해 땅의 욕망으로 가득 찬 나를 부인하는(비우는)것,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말씀을 모르면 이웃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신앙(사랑)의 출발은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시작하심을 알아야 한다.
32 그러자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33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 = 제사 행위보다 사랑이 중요하다고 기특한 말은 했다. 그러한 율법학자에게 아직 하느님 나라가 들어오지 못했다. 아직 사랑의 계명의 뜻을 깨닫지 못했다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사랑으로 죽으러 오신, 곧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하셔서 그 아버지의 뜻에 죽기까지 순명 하러 오신, 그래서 이웃인 율법학자 구원을 위해, 그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기 위해, 번 제물과 희생 제사로 죽으러 오신 구원자 그리스도를 몰라보고 훌륭한 선생님 정도로 보고 있으니 그가 어찌 깨달았다고, 하느님 나라가 들어 왔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 율법학자에게 “너는 하느님 나라에서 멀지 않다.” 하신 말씀은 “너는 아직 하느님 나라 밖에 있다” 라는 말씀이신 것이다.
(루가4,21)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마태12,28) 28 그러나 내가 하느님의 영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골로3,1-2) 1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2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자신을 먼저 사랑할 줄 알게 해 주소서 의탁하나이다. 영광이 성부와 성저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영원히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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