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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 연중 제9주간 목요일: 마르코 12, 28 ~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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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기승 쪽지 캡슐 작성일2024-06-05 조회수185 추천수3 반대(0) 신고

“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12,12,28ㄱㄷ-34)

오늘 복음의 율법 학자는 요즘 사람들이 자주 언급하는 ‘답장너 loaded question'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아는 것처럼 현문현답賢問賢答의 전형적인 실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예전 학창 시절을 떠오르면 부끄러움이 많은 학생이었기에, 선뜻 질문을 던지지 못했습니다. 물론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모르는 것, 혹 불확실한 것을 명백하게 알고 싶은 마음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렇습니다. 좋은 질문은 좋은 대답을 얻게 될 것이고, 이는 곧 어둠에서 빛으로 향하는 인생의 과정입니다. 일찍이 ’테야르 드 샤르댕‘은 생명에게는 어둠 속을 더듬어 가면서 가능한 모든 길을 찾아보려는 방향성이 있으며, 이것이 진화를 부채질한다, 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에서의 어둠은 빛의 부재뿐만 아니라 모름에 대한 은유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어둠은 불가에서 이야기하는 무명無明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러기에 빛을 찾아 열심히 더듬는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모르고 있으며 어디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아무튼 율법 학자는 예수님과 사두가이 사이의 토론을 열심히 들었습니다. 그가 열심히 들은 까닭은 바로 그의 내적 호기심의 발로이며, 무려 613개 조항의 계명 가운데 도대체 으뜸가는 계명은 어떤 계명일까, 하고 물어왔기에, 이 토론을 지켜보면서 이분이시라면 나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했나 봅니다. 그래서 그는 주저하지 않고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12,28)라는 질문을 예수님께 드린 것입니다. 그 율법 학자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이 갖고 있던 오래고 묵은 질문이었지만, 아무도 감히 질문하지 못한 것은 저처럼 부끄러움이 많거나, 호기심이 부족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이 율법 학자 때문에 우리가 참으로 알고 싶었던 으뜸 계명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질문을 받고서 예수님은 비로소, 구약과 신약을 집약하고 요약해서 단 두 가지로(=사랑의 이중 계명) 총괄합니다. 즉, “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12,30.31) 하느님 사랑이 첫째이며 이웃 사랑이 둘째라고 대답하십니다. 이 두 사랑은, 특별히 마태오 25장의 최후 심판에서 잘 드러나듯이,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 하느님께 대한 사랑의 발로라고 밝힘에서 그 절정에 이릅니다. 

그러기에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첫째와 둘째 계명을 언급하기 전에 먼저,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라고 전제하고서 계명을 말씀하셨고, 이 가르침을 듣고 난 다음에 율법 학자 역시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12,32)라는 표현에 주목하고, 이 표현의 의미를 새겨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깨닫지 못하고서는 뭣이 중헌디, 뭣이 중하냐고!, 라는 표현처럼 본말이 전도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의 순서와 가치 서열을 파악하기 이전에, 그리스도인 존재의 실천 원리로서 계명을 논하기 이전에, 이 계명의 기원과 왜 이 계명을 소중히 여기고 실천해야 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근거와 기원은 바로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뿐이시며, 한 분뿐이신 하느님 안에서 우리 모두 다 그분의 자녀이고 형제라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마음과 목숨, 정신과 힘을 다해 이를 깨우쳐 깨달을 때 그분을 온전히 사랑하고 그 사랑 안에서 자연스럽게 우리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이론이 아닌 실재이며, 계명이 아닌 존재 이유이고 보람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율법 학자가 이런 대답을 하기 이전부터 그렇게 노력하면서 살아 온 모습을 꿰뚫어 보시고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12, 34)하고 칭찬과 함께 그런 삶을 충실히 살아가도록 독려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또한 이 슬기롭게 대답한 율법 학자처럼 슬기롭게 대답할 뿐만 아니라 실천하면서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주님으로부터 이런 칭찬을 듣는 삶을 충실히 살아가도록 합시다. “주님, 당신의 길을 알려 주시고 그 빛으로, 그 진리로 오늘 이끌어 주시옵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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