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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모세 신부_<사랑받고 있음을 먼저 믿어야 하고,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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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6-06 조회수175 추천수3 반대(0) 신고

<연중 제9주간 목요일 강론>(2024. 6. 6. 목)(마르 12,28ㄱㄷ-34)

 

 

 

<사랑받고 있음을 먼저 믿어야 하고, 깨달아야 한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 12,29-31).”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마르 12,32-33).”

 

 

 

1)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라는 말씀과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만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만일에 하느님이 아닌 것들도 사랑하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하느님을 모독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재물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재물이든지 권력이든지 명예든지, 아니면 다른 그 무엇이든지

 

간에, 하느님이 아닌 것들을 하느님처럼 떠받들거나,

 

하느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고, 허무하게 사라질 것들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에

 

대단히 어리석은 일이기도 합니다.

 

신앙인은 ‘하느님만’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2) “도대체 사랑이란 무엇인가?”

 

예수님의 말씀을 사랑에 대한 정의(定義)로 삼을 수 있습니다.

 

“사랑이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섬기는 일, 또는 그렇게 섬기고 싶어 하는 마음.”

 

이 말씀을 간단하게 줄이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일, 또는 그렇게 바치고 싶어 하는 마음”입니다.

 

바로 그렇게 하느님을 섬기고 사랑한 사람들 가운데에서

 

대표적인 모범이 되는 사람은 ‘어떤 가난한 과부’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마르 12,43-44).”

 

<사실, 우리 주위에도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하느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잘 드러나지 않아서 사람들이 모르는 경우도 있고,

 

당사자 자신도 그것을 모를 때가 많지만,

 

어떻든 복음서에 나오는 ‘가난한 과부’는 현실 세계에서

 

만나기 어려운 굉장히 특이하고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 말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마음먹는 일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는데,

 

누구든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충분히 실행할 수 있습니다.>

 

 

 

3) “왜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는가?”

 

요한 사도는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기도 전에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까 우리도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1요한 4,9-12).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사랑을 갈망한다는 것을

 

우리보다 먼저 아시고, 우리가 그것을 청하기도 전에 먼저

 

그 사랑을 주셨습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모든 것’을, 즉 당신의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전부 다 우리에게(나에게) 주시면서,

 

우리를(나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것을 믿는다면, 우리도 그렇게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참 사랑은 참된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쁨을 사랑의 이유로 말씀하십니다(요한 15,11).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섬길 때,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기쁨’과 ‘큰 행복을 얻게 됩니다.

 

<누구나 그 체험을 할 수 있고,

 

또 실제로 많은 이들이 그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4) ‘이웃 사랑’은 ‘하느님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인데(1요한 4,20), ‘이웃 사랑’의 경우에도,

 

이웃이 먼저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나는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정말로 어렵다.”

 

라고만 생각하고 있는데, 누군가는 그 어려운 일을 이미

 

나를 위해서, 나에게 실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누군가’가 누구인지 모를 수도 있고, 알 수도 있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가족도 있고, 멀리 떨어져 있는

 

‘모르는 사람’이 그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그 사랑을 받고 있음을 깨닫는 일에서부터

 

사랑 실천이 시작됩니다.

 

<자기가 사랑받고 있음을 모르거나 부정하면서

 

마음속에 미움과 원한만 가득 품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마음에서 사랑을 밀어내는 사람이고,

 

사랑을 밀어냄으로써 더 깊은 미움 속으로 빠지게 됩니다.>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사랑받고 있음을 깨닫거나, 알고 있기만 하면 됩니다.

 

어렵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더욱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갓난아기와 그 아기의 부모 사이에 오고가는 사랑을 보면,

 

그 사랑은 사랑에 관한 어떤 이론 같은 것은 필요가 없는,

 

이기심이나 자기애 같은 말들을 생각하거나 신경 쓸

 

필요도 없는, 정말로 사랑 말고는 다른 말이 필요 없는,

 

아주 생생하게 살아 있는 참 사랑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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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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