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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0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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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24-06-08 조회수490 추천수6 반대(0)

지난 515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댈러스 인근에 보현사엘 다녀왔습니다. 스님도 성탄 때는 성당으로 왔다고 합니다. 보현사에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절의 주지 스님이 여자 스님이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남자 스님인 줄 알았는데 여자 스님이라 조금 놀랐습니다. 아직 예불 중이라서 법당에서 잠시 기다렸습니다. 스님은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을 암송했습니다. 그렇게 10분 남짓 기다리면서 성당과는 사뭇 다른 사찰의 예불을 보았습니다. 스님은 끊임없이 목탁을 두드리고, 염불을 외웠고, 불자들도 따라 하였습니다. 성당의 미사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사찰의 예불은 목탁과 염불로 이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성당은 제대와 신자 석이 있고, 신자 석은 대부분 의자로 되어 있는데 사찰은 아직 의자가 아닌 방석이 깔린 바닥에 앉는 것 같았습니다. 예불을 마치고 스님과 차를 마시고 돌아왔습니다. 스님은 공양하고 가라고 했는데 차만 마시고 왔습니다.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천주교회가 동양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문화적인 차이가 있었습니다. 토착화하는 과정에서 박해와 시련이 있었습니다. 동양의 종교인 불교가 서양에 전해지는데도, 비슷한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이 미국에서는 공휴일이 아니기 때문에 부처님 오신 날 행사를 주일로 옮겨서 한다고 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드리면서 언젠가 미국에서도 부처님 오신 날이 공휴일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하느님께서는 아담에게 아담아! 너는 어디에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담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그렇게 묻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아담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 아담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비슷한 질문을 아담의 아들 카인에게도 하십니다. ‘카인아! 네 동생 아벨은 어디에 있느냐?’ 하느님께서는 아벨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그렇게 묻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아담과 카인의 대답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 아담은 어디에 있다고 대답하기 전에 알몸이라서 숨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처음부터 아담의 죄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아담이 스스로 자기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카인도 하느님께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카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들어 보아라.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처음부터 카인의 죄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카인이 스스로 자기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생각해 보니 보현사의 지암 스님이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의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나 어디에 있느냐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저는 스님이 되라고 하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미 사제로 33년을 살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찰의 분위기와 사찰의 문화가 제게는 생소하기 때문입니다. 보현사에서 17년을 주지 스님으로 지내고 있는 지암 스님은 전임 신부님들과도 인사했다고 합니다. 스님 또한 성당의 사제가 되라고 하면 어려울 것입니다. 이미 출가해서 30년 넘게 불가에 몸을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성당의 분위기와 성당의 문화가 생소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처님도, 하느님께서도 스님과 제가 어디에 있는지 묻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부처님도, 하느님께서도 스님과 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물으실 것입니다. 스님이 , , 를 멸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불자들에게 전하며 팔정도의 삶을 살아간다면 부처님의 물으심에 아무런 주저함이 없이 !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제가 복음삼덕과 향주삼덕의 가르침을 교우들에게 전하며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따른다면 저 역시 하느님의 부르심에 주저함 없이 !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죄를 먼저 묻지 않으셨듯이, 우리도 우리에게 잘못한 이의 죄를 묻기 전에, 그들이 뉘우칠 기회를 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형제와 자매 그리고 부모에 대한 을 새롭게 하십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형제와 자매 그리고 부모를 넘어서라고 하십니다. 부처님의 자비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이는 모두가 불자이듯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하느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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