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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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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6-08 조회수226 추천수3 반대(0) 신고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강론>

(2024. 6. 8. 토)(루카 2,41-51)

 

복음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41-51
41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42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43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44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45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46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47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48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49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50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51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루카 2,41-46).”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루카 2,48)”

 

1)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자녀의 사랑은

원초적인 본성이고, 그 자체로 순수하고 단순한 것입니다.

그 사랑에 대해서 무슨 복잡한 신학적인 설명이나

성서학적인 해석을 하는 것은 중요하지도 않은 일이고,

필요하지도 않은 일입니다.

어린 예수님을 잃어버렸을 때 성모님과 요셉 성인이 ‘애타게’

찾아다닌 것은, 사랑했기 때문이고,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과 걱정을 길게 설명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잃었을 때 그렇게 애타게 찾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는 오늘날에도 그렇게

‘애타게’ 우리를 찾고 계십니다.

<‘성모 성심 기념일’을 맞아서 우리가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어머니의 슬픔과 고통을 묵상하면서 회개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주님을 떠나는 것과 같고, 주님과

성모님 입장에서는 자녀 하나를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애타게’ 우리를 찾으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여러 곳에서 발현하실 때마다 계속 눈물을

흘리시면서 인간들의 회개를 호소하신 것은, 인간들이

죄 속에서 살면서 회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사람들 가운데에는 “나는 죄인이 아니다.

나는 잃어버린 자식이 아니다.” 라고 주장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 입으로 주장하는 것 자체가,

바리사이와 같은 교만이고 위선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 교만과 위선도 큰 죄입니다.

성인 성녀들 중에는 “나는 죄인이 아니다. 나는 성인이다.”

라고 말한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성인 성녀들은 끊임없이 회개한 분들입니다.

오늘날의 우리 주위에도 분명히 주님과 성모님께

큰 기쁨이 되는 훌륭하고 거룩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스스로 의인이라고 자처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한 점들을 끊임없이 살피면서

회개를 멈추지 않는 분들입니다.

 

2) 카인이 아벨을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창세 4,8),

그들의 어머니인 하와의 심정은 어땠을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을 크게 겪었을 것입니다.

아벨의 죽음은 당연히 큰 고통과 큰 슬픔이 되었을 것이고,

살인자가 되어서 하느님 앞에서 쫓겨난 카인의 처지도

하와에게는 큰 고통과 큰 슬픔이 되었을 것입니다.

둘 다 하와에게는 사랑하는 아들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형제간의 갈등이라는 점만 보면, 야곱과 에사우의 일은,

카인과 아벨의 일과 비슷합니다.

야곱과 에사우의 어머니 레베카가 야곱에게 한 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레베카는 큰아들 에사우가 한 말을 전해 듣고는, 사람을

보내어 작은아들 야곱을 불러 놓고 그에게 말하였다. ‘얘야,

너의 형 에사우가 너를 죽여서 원한을 풀려고 한다. 그러니

내 아들아, 내 말을 듣고 일어나 하란에 있는 내 오라버니

라반에게로 달아나라. 네 형의 분이 풀릴 때까지, 얼마 동안

그분 집에 머물러라. 너에 대한 네 형의 분노가 풀리고, 네가

형에게 한 일을 형이 잊을 때까지만이다. 그러면 내가 사람을

보내어 너를 그곳에서 데려오게 하겠다. 내가 어찌 한날에

너희 둘을 다 잃을 수 있겠느냐?’(창세 27,42-45)”

이 말은, 어머니의 심정과 어머니의 사랑을 잘 나타냅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아들들 중에 누가 더 잘못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둘 다 똑같이 사랑하는 아들들일 뿐이고, 둘 다 똑같이

지켜야 할 아들들일 뿐입니다.

<여기서 둘 다 잃을 수 없다는 말은, 하나라도 살기를

바란다는 뜻이 아니라, 둘 다 살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3) 지금 이곳저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들을 보면,

카인이 아벨을 죽인 일과도 같고,

에사우가 야곱을 죽이려고 했던 일과도 같습니다.

성모님의 입장에서는 ‘누가 죄인이냐?’는,

또는 ‘누구의 죄가 더 크냐?’는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이 상황 자체가

성모님의 큰 고통일 것이고, 큰 슬픔일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성모님께서는 인류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계실 것입니다.

<전쟁은 무조건 중단되어야 합니다.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고 사는 교회는(신앙인들은)

전쟁 종식을 위해서 계속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내 편, 네 편을 가르기만 하고, 누가 더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기만 하면서, 내 편이 아닌 사람들을 전부 다 죽여서

제거해버리면, 참 평화를 누리게 될까?

참 평화를 누리기는커녕

하느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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