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루카2,41-51)/ 반영억 라파엘 신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성모마리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모마리아를 가득 채워준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또한 성모마리아는 그 말씀의 기쁨을 몽땅 전달해 주십니다. 성모마리아는 경청의 달인이셨습니다. 만일 우리도 경청하는 습관을 몸에, 배게 했다면 매우 많은 문제를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루카복음 2장19절에는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 깊이 새겨 오래 간직하였다.” 2장 52절에는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루카2,52).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오묘한 뜻 앞에서 성모님께서 얼마나 깊이, 겸손하게 서 있었는가를 잘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을 내세우지 않으십니다. 성모님은 언제나 하느님의 뜻 안에서 고요하게 움직이시는 사려 깊은 분이십니다.
성모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잉태하셨고, 성령께서 당신을 완전히 차지하시고 당신 안에서 원하시는 대로 활동하실 수 있게끔 자신을 성령의 손에 내어 드리신 분이십니다. 성모님의 겸손과 경청, 의탁의 자세는 우리 믿음의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 앞에 가난하고 겸손한 자로 서 있을 때, 우리 마음속에서 하느님의 성령께서 자유롭게 일하실 수 있게끔 내맡길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서도 성모님 안에서와 같은 위대한 업적을 이루십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귀담아듣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에 자신을 맡겼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선물에 자신을 맡겨야 하겠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운동을 하였습니다. 지금은 왜소하게 보이지만 초등학교 때에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키가 큰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운동을 하게 되었는데 마라톤도 하고 씨름을 하였습니다. 시합을 앞두고는 늦게까지 연습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연습 후에는 찐빵과 만두가 준비되어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시합에 ‘이겨라’ 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시합 날 입고 간 속 팬티에는 어김없이 헝겊 한 조각이 붙어있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갓난아기 때 입었던 ‘배냇저고리’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부적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습니다. ‘이겨라’고 말씀은 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꼭 이길 것이라는 간절한 믿음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몰랐었지만, 지금은 어머니의 기도와 큰 사랑으로 받아들입니다. 어머니께서 92세에 세상을 떠나셨는데 그것의 일부를 여전히 가지고 계셨고, 이제는 제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사랑의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 성모님의 마음을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성령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잉태하시고 낳으신 후 그 지상 삶의 여정과 죽음에까지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그분의 모든 것을 지켜보시고 그분의 마음을 헤아리시며 오로지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다리신 어머니의 마음, 아들 구세주 그리스도의 협력자로 일생을 봉헌하시고 아들의 십자가 밑에 서 계셨던 어머니, 주검을 품에 안으셔야 했던 어머니,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기도에 전념하셨던 어머니의 마음을 기억합니다.
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부모는 길 잃은 예수님을 찾아 사흘이나 헤맸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을 찾아 어머니가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습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루카2,48-50). 사실 요셉이 아버지인데 또 아버지가 따로 있다니 정말 뚱딴지같은 소리였습니다. 따라서 그 신비로운 진실을 알아듣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때를 기다리며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도 순종의 생활로써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습니다. 지금은 잘 알아들을 수 없으나 아들에 대한 한없는 사랑은 한결같았습니다.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아들을 찾아 헤맨 사랑의 울타리 안에서 또한 모든 것을 마음속에 간직한 어머니의 큰 품에서 아들은 커갔습니다. 루카복음 사가는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루카2,52)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하느님과 동료 인간들의 총애를 받았고 그분은 자라면서 사회 안에서 당신의 자리를 잡아나가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아들에 의해 어머니의 마음도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어머니의 믿음은 추호도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우리의 어머니 성모님은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으셨기에 복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믿음도 어머니를 닮길 희망합니다.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