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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미사 때마다 성령을 모독할 수 없게 하는 예방주사 같은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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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백봉7 쪽지 캡슐 작성일2024-06-09 조회수334 추천수2 반대(0) 신고

 

 

 

 

 

 

2024년 나해 연중 제10주일

 

 

 

<미사 때마다 성령을 모독할 수 없게 하는 예방주사 같은 한 마디>

 

 

 

복음: 마르코 3,20-35

 






하느님의 아들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

(1540-1550), 모스크바 크레믈린 Cathedral of the Sleeper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는 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성령을 주러 오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성령을 모독할까요? 성령에 자신 안에서 행하려고 하는 일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예방은 100% 가능하지만, 일단 걸리면 100% 죽는 병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광견병입니다. 광견병 바이러스는 특이하게도 우리 몸의 면역세포를 다 피해 다닙니다. 뇌까지 도달하기 전까지는 세포도, 신경도 훼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뇌에 도달하면 100% 사망입니다. 아직 치료제는 개발되지 않았지만, 광견병은 예방주사만 맞으면 100% 예방됩니다. 그런데도 한 해에 지구상에서 6만 명 정도가 광견병으로 사망한다고 합니다. 자기 몸 안에 광견병 예방주사가 들어오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영혼에 광견병 바이러스는 무엇이겠고 또 그 광견병을 무력화시키는 예방주사는 무엇일까요? 광견병은 ‘공수병’이라고도 하는데, 물을 무서워해서 목이 말라서도 죽습니다. 사실 물은 성령의 상징입니다. 성령을 거부하게 만드는 바이러스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성령은 마치 성모 마리아께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게 하시는 것처럼 우리 안에도 그리스도께서 사시게 하십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긍정하면 성령께서 그리스도를 잉태시키지 못합니다. 사람 안에 두 주인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무라이가 된 천민 아이는 기둥에 들어가 죽은 어머니의 피로 도망치고 싶은 이기적인 자아가 죽었습니다. 성령님은 내 안의 자아, 곧 뱀을 죽이러 오시는데 그것을 긍정하고 있다면 성령님을 모독하는 게 됩니다. 

 

 

    2002년 4월 29일, 독일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총기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에르푸르트라는 도시의 구텐베르크 김나지움(10~19세 학생들이 다니는 인문계 학교)에서 퇴학당해 앙심을 품은 한 학생이 교사 열두 명과 여학생 두 명 등 총 열여섯 명을 죽인 사건입니다. 대학 입학 자격시험에 떨어진 로베르트(19세)는 기말시험을 치르지 않기 위해 가짜 진단서를 만들어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발각되어 퇴학 처리되었고, 복수심에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이때 한 교사가 나섰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총은 난사하는 그 앞에 60세의 라이너 하이제 교사는 복면을 쓴 그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차분히 복면을 벗겼습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이 가르친 학생 로베르트라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하이제 교사는 자기 가슴을 내보이며 말했습니다. 

   

 

    “총을 쏘고 싶으면 쏴라. 내 눈을 보고 방아쇠를 당겨보란 말이다.”

로베르트는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선생님. 오늘은 실컷 쐈습니다. 이제 재미가 없네요.”

로베르트는 순순히 총을 내려놓았고 하이제 교사는 그를 빈 교실에 밀어 넣고 문을 잠갔습니다. 잠시 후 로베르트는 교실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출처: 『어떻게 살 것인가』, 이충호, 하늘 아래]

 

 

    하이제 교사의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 성령입니다. 성령은 그 사람이 모든 것이 자신의 탓임을 인정할 때 영향을 줍니다. 사실 퇴학 당한 것은 로베르트 자기 탓입니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선생님의 가슴에 방아쇠를 당겼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미사 때마다 하는 “내 탓이요!”는 성령을 모독할 수 없게 만들고 말씀과 성체로 오는 성령님을 받아들일 준비를 시키는 기도입니다. 지금 행복하지 못한 것을 진심으로 내 탓으로 여기면 성령께서 도와주십니다. 

 

 

    “원수 같은 인간 때문에 내가 힘들고 암에 걸려 죽어가는데 그것이 어떻게 나의 탓입니까?”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원수 같은 인간도 용서하는 신앙인이 있습니다. 고정원 씨 같은 경우입니다. 그는 자기 일가족을 살해한 유영철 탓을 하지 않았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탓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매일 밤새워 기도했고 성령께서 용서할 힘을 주셔서 그를 양자로 삼게 하셨습니다. 

 

 

    지금 행복하지 못하다면 모든 것이 나의 탓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평화입니다. 모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주시는 분 앞에서 부족한 게 다른 사람 탓이라고 하면 그 선물은 무용지물이 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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