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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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4.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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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24-06-09 조회수336 추천수6 반대(0) 신고

  2024년 6월 9일

연중 제10주일

‘생로병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

이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하지요.

인간이라면 이 네 단계를

거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혹시 뜻밖의 사건으로 ‘늙음’을

겪지 않는 때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이 모두를

경험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생(生)’에 대해서는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물론 이 역시 자기의 기쁨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기쁨입니다)

‘로병사(老病死)’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거부하려는 우리입니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에는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함께 살아가야

거부하고 싶을 정도로 힘든 그 순간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 본당에서 봉성체하며

만났던 할머니가 생각납니다.

봉성체 갈 때마다 이 할머니는

자기 고통을 호소하셨습니다.

너무 아파서 못 참겠는데 자녀들이

병원에도 데려다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자녀들이 수시로 병원에

모시고 갔지만, 그때마다 의사는

아무런 병이 없다는 대답만 하셨습니다.

나이 들어 어쩔 수 없으니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씀뿐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자기 고통을 알아주지 않는

가족이 미웠던 것입니다.

그 미움이 커져서 더 아프고

힘들었던 것이지요.

그 누구도 인정해 주지 않는 고통,

나 혼자 이를 이겨내야 하니

견디기 힘든 것입니다.

혼자면 더 아픕니다.

나눠야 그래도 그럭저럭 버틸만합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문제는 자기 스스로

외톨이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아프다고 가족들을 계속 욕하는데

과연 사랑으로 계속 받아줄 수 있을까요?

그래서 나를 낮춰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나를 낮춰야 주님과도 함께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겸손하라 명령하신 것은

우리 고통을 조금이나마 낮춰주시기

위함이 아닐까요?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미쳤다고 생각하면서

주님을 붙잡으러 옵니다.

또 율법학자들은 “그는 베엘제불이 들렸다,

그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라면서 예수님을 반대합니다.

그들 모두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고 무조건

거부하려는 마음만을 가졌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모독한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들과 하느님께서

행하신 일을 모독한 죄는 모두 하느님께

대항하는 행위이기에

무거운 죄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런 죄도 용서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령을 모독한 죄는

왜 용서받지 못할까요?

용서는 회개를 전제로 합니다.

즉, 성령을 모독한 죄는 회개하지 않는 죄,

주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고 함께하려고도

하지 않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회개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기

위해 함께하고 있나요?

오늘의 명언

탐욕은 모든 것을 얻고자

욕심내어서 도리어 모든 것을 잃게 한다.

(몽테뉴)

사진설명: 사탄은 끝장이 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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