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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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6-10 | 조회수337 | 추천수8 | 반대(0) |
언론사와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제가 신문사에 있었기 때문에 인터뷰 부탁을 자주 했었습니다. 인터뷰는 ‘약속 대련’처럼 미리 질문지를 보내기 마련입니다. 일정이 빠듯하게 잡혀서인지 질문지를 미처 받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확인하니 이 메일로 보냈는데 제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1시간 남짓 인터뷰는 잘 끝냈습니다. 기자는 익숙하게 핸드폰을 녹음으로 해놓고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인터뷰의 내용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기자는 먼저 제 소개를 부탁했습니다. 저는 저의 호적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세례명인 ‘가브리엘’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가브리엘은 천사입니다.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마리아는 가브리엘의 말을 듣고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응답했습니다. 가브리엘의 방문과 마리아의 응답으로 구세주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저는 가브리엘 천사처럼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뉴욕에서는 신문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였다면, 이곳 댈러스에서는 말씀과 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기자는 ‘성당과 교회’의 차이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가톨릭과 개신교회의 차이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일부 개신교회에서는 가톨릭에 대해서 비방과 비난을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가톨릭은 큰 집, 개신교회는 작은 집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울 터인즉, 그 무엇도 이 교회를 무너트리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교회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셨고, 교회는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에 의해서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가톨릭교회에서 작은 집인 개신교회가 나왔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종교개혁을 주장했던 마르틴 루터는 가톨릭 성직자였습니다. 큰 집과 작은 집은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가톨릭의 장점은 ‘질서’이고 개신교회의 장점은 ‘자유’라고 하였습니다. 가톨릭은 성경과 성전을 통해서 발전하였습니다. 가톨릭은 교계제도를 통해서 발전하였습니다. 바티칸에 있는 교황청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가진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안에 질서가 있습니다. 반면에 개신교회는 오직 ‘성경’이라는 모토로 발전하였습니다. 가톨릭에 비해서 개신교회는 그 조직이 자유롭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고속도로에는 ‘휴게소’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즐겨 찾는 휴게소는 어떤 휴게소일까요? 직원들이 친절하고, 음식이 맛있고, 간단한 쇼핑도 할 수 있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도 있고, 샤워 시설도 있고, 주유소의 기름값이 저렴한 곳입니다. 그런 휴게소는 사람들의 입소문이 나서 문전성시를 이룰 것입니다. 사람들이 외면하는 휴게소는 어떤 휴게소일까요? 직원들이 불친절하고, 음식도 맛이 없고, 아무런 편의시설이 없는 곳입니다. 게다가 물건값이 비싼 곳입니다. 그런 휴게소는 입소문이 나서 파리만 날릴 것입니다. 휴게소가 아무리 좋아도 그곳에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잠시 충전의 시간을 가지면 미련 없이 목적지를 향해서 출발합니다. 종교는 깨달음을 향한, 영원한 생명을 향한 휴게소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언제 종교를 찾을까요? 종교가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줄 때입니다. 종교가 지친 삶에 위로와 용기를 줄 때입니다. 종교가 불의한 세상에 희망을 줄 때입니다. 종교가 가난하고 약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 때입니다. 종교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와 행복을 줄 때입니다. 사람들이 언제 종교를 외면할까요? 종교가 속 빈 강정일 때입니다. 종교가 권력에 야합할 때입니다. 종교가 자본의 논리를 따라갈 때입니다. 종교가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역할을 외면할 때입니다. 천주교와 개신교라는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걸 포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기자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청하였습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근심 때문에 지금의 기쁨을 놓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보다는 해야 할 일을 먼저 하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의 말을 들려주었습니다. “언제나 기도하십시오. 항상 감사하십시오, 늘 기뻐하십시오.” 오늘 복음은 제가 이곳 댈러스에서 해야 할 소명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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