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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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6-12 | 조회수148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마태 5,17-19).”
1) 예수님과 바리사이들이 안식일 문제로 충돌한 일이 많았는데, 그런 일들 때문에,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이 하느님의 계명들과 율법들을 감히 폐지하려고 하는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의 계명들과 율법들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계명들과 율법들이 미완성 상태라는 뜻이 아니고, 사람들의 실천이 불완전하고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완전한 실천을 할 수 있도록 가르치려고 왔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율법의 완성’은 ‘율법 실천의 완성’입니다.> 실천이 불완전하고 부족했던 사람들 가운데 대표적인 예가 ‘낙타와 바늘귀’ 이야기에 나오는 어떤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예수님께 물었고(마르 10,17), 예수님께서는 십계명을 잘 지키면 된다고 대답하셨습니다(마르 10,19). 그런데 그는 십계명만으로는 무엇인가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고, 예수님의 대답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마르 10,20-22).”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셨기 때문에, 그는 분명히 재물을 섬기는 사람은 아니었고, 또 바리사이들이나 율법학자들 같은 ‘율법주의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올바른 지향으로 계명 실천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긴 했는데, 그에게 걸림돌로 작용한 것은 바로 ‘재물에 대한 애착심’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섬기기는 하지만 재물에 대한 애착심에 막혀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부족해지고 불완전해진 것입니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그에게 부족한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경우에는, 물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데, 율법 실천을 완성하는 방법은 “재물에 대한 애착심을 버리고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온전히 실천하는 것”입니다.>
2)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은, ‘낙타와 바늘귀’ 이야기를 해설한 것과 같은 말입니다.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탐내서는 안 된다.’는 계명과 그 밖의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모두 이 한마디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 13,8-10).” 계명들과 율법들을 잘 지키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랑으로’(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만일에 사랑 없이 계명들과 율법들을 지키는 것으로만 그친다면, 그것이 바로 율법주의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산상설교’ 전체가 ‘율법 실천의 완성’에 대한 가르침이기 때문에, 산상설교에서 가장 강조되는 말은, 또는 산상설교의 핵심 주제는 바로 ‘사랑’입니다.>
3)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종말의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입니다.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는, “계명들과 율법들에 들어 있는 ‘하느님의 뜻’은 변함이 없다.”입니다. <한 자 한 획도 건드리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종말의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면 계명들과 율법들은 없어지는가?”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명들과 율법들의 역할이 완성됩니다. 그래서 하느님 나라에서는 아무도 계명들과 율법들을 의식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어떻든 계명들과 율법들에 들어 있는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사랑’은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는 “자기 마음대로 계명들을 큰 것과 작은 것으로 분류해서, 작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시하거나 안 지키고”입니다.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남을 죄짓게 하는 죄를 짓는 자”입니다. <계명들과 율법들은 전부 다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안식일 문제로 바리사이들과 충돌한 일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바리사이들은 ‘사랑 없이’ 안식일을 지키기만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은 사랑을 실천하는 날이다.” 라고 가르치셨고, 그렇게 실행하셨습니다. 따라서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쳐 주신 예수님이 안식일을 원래의 정신대로 지키신 것이고,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자들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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