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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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6-12 | 조회수238 | 추천수9 | 반대(0) |
‘21세기에 여전히 종교는’이라는 강의를 들었습니다. 종교의 발전 과정에서 학자들은 ‘자연, 신, 인간’의 흐름을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를 거치면서 자연의 엄청난 힘에 대해서 경외감을 느꼈습니다. 이때 생겨난 종교는 자연물을 숭배하는 모습입니다. 큰 바위, 높은 산, 오래된 나무와 같은 대상을 숭배하였습니다. 인간보다 힘이 센 동물을 숭배하는 모습입니다. 곰, 호랑이, 사자, 코끼리, 늑대와 같은 대상을 숭배하였습니다. 인간의 의식이 발전하고, 능력이 발전하면서 ‘신’을 숭배하게 됩니다.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가 있습니다. 우리의 단군신화가 있습니다. 민족은 자신들이 숭배하는 신을 정하였고, 신을 경배하였습니다. 이런 신화의 시대가 발전하면서 ‘유일신’을 믿는 종교가 생겼습니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는 유일신을 믿는 종교입니다. 이 유일신의 시대는 신분이 정해진 시대입니다. 소수의 엘리트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신정일치(神政一致)의 사회였습니다. 성주나 왕이 종교를 선택하면 백성들 모두가 같은 종교를 믿는 사회였습니다. 이 신화와 신의 시대가 2,000년 넘게 이어왔습니다. 르네상스, 산업혁명, 과학의 발전,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이제 ‘인간’ 중심의 시대가 왔습니다. 자연과 동물을 숭배하던 인간은 신을 숭배하였고, 신을 숭배하던 인간은 이제 인간의 능력과 인간이 주체가 되는 세상을 열었습니다. 어떤 동물도 인간과 대적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종교가 차지하던 자리에 인간의 과학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교육의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면서 인간은 누군가의 간섭과 지배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국가였던 곳에서도 비신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 종교 국가인 대한민국에서도 비신자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종교가 가지는 힘은 ‘친교, 공동체, 조직’이었습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지갑을 들고 거의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1인 가구의 비중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인간은 여전히 고독하고, 인간은 여전히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영적인 체험,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지식, 윤리적인 실천은 여전히 종교가 가지고 있는 매력입니다. 우리는 내비게이션, 인공위성, 기상관측 기구를 통해서 원하는 곳을 쉽게 갈 수 있고, 1주일 혹은 한 달가량의 날씨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지혜롭다 할 수 없습니다. 정말 지혜로운 것은 하느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의로움을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내비게이션으로 찾아 갈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의로움은 인공위성으로 예측하기도 어렵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처럼 겉모습만 하느님을 따라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신앙인은 세상 사람들 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하고, 세상 사람들 보다 더 나누며,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참된 지혜는 며칠 앞의 날씨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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