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4년 1월 18 목 하느님 뜻이 주시는 활동적 생명을 사람 모두가 받도록 하느님 뜻 안에서 사는 경험자가 인도하여 주어야 할 의무 한영구 실명입니다. 닉네임이 아닙니다 2024.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빛의 생명과 새 생명을 주어 유전인자 상처 없애주고 하느님 뜻의 활동적 생명 주어 영과 마 ... | |||
작성자한영구 | 작성일2024-06-12 | 조회수126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1월 18 목요일 아침 식사 전에
천상의 책 제20권 31장 1926년 11월 29일
종들의 종노릇을 하게 된 왕의 비유, 인간이 매사에 하느님 뜻의 도움을 받을 때.
를 읽었습니다. 읽은 내용 중의 5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아버지 하느님을 대신하여 루이사에게 모든 것을 주십니다. 루이사 너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하는구나. 누가 너만큼 피조물을 사랑해 왔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그 점에 있어서는 내 인성마저 너보다 한참 뒤처진다. 너는 내 안에 가려져 있고, 너는 시작도 끝도 없는 내 활동 안에 남아 있다. 너는 언제나 네 자리에 있으면서 모든 조물에게 생명을 준다. 인간에게 너의 생명을 가져다주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못난 작은 이는 지금 그 활동적 생명을 받는 것에만 집착합니다. 루이사께서는 사람, 피조물들을 사랑하여 오고 있습니다.
루이사는 시작도 끝도 없는 루이사의 활동 안에 남아 있다. 너는 언제나 네 자리에 있으면서 모든 조물에게 생명을 준다. 인간에게 너의 생명을 가져다주게 하려는 것이다. 활동적 생명에서, 하느님의 의지로 창조하신 영원한 의지의 태양-해-의 빛과 열이 그 조물 중에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생명을 성장하게 하여 그 성장한 것 중에서 질서와 조화에 따라 선택한 그 자연적 생명의 일용할 양식인 음식을 활동적 생명과 함께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루이사께서는 조물에게 생명을 주어, 조물에게서 받고있는 피조물 사람 루이사의 생명을 인간에게 줍니다. 이 못난 작은 이는 아직 초보 단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루이사처럼 피조물을 사랑하여 피조물 사람에게 루이사의 생명을 가져다주려는 행위를, 저는 현재 아직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활동적 생명을 알지 못하는 피조물 사람에게 그 생명을 나누어 주는 아량이 있어야 함을 알았습니다.
오늘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이 못난 작은 이는 자연적 생명에 일용할 양식인 음식을 먹고 활동적 생명을 많이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기도드리는 그 순서대로 오늘도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내 온 마음 다 바쳐서 주를 경배하오리 나의 기쁨 나의 희망 오! 주여 오소서 내 마음에. 내 온 마음 다 바쳐서 주를 경배하오리 나의 사랑 나의 평화 오! 주여 오소서 내 마음에. 눈물이 약간 맺힙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찬미합니다. 하느님, 하느님 뜻의 사랑으로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하느님 찬양합니다. 아멘. 하느님 뜻의 사랑과 평화를 동시에 주시는 크나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평화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그 신성한 덕성을 소유하였습니다. 그 평화를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직접 사람들에게 주십니다. 이 못난 작은 이에게도 평화를 주십니다. 평화 안에서 차분하게 평온한 마음으로 참 평화를 주시기를 기도드리고, 평화를 받아 저의 영과 마음과 정신과 그리고 저의 몸 모두가 평화 안에서 평화를 받으면서 오늘도 저에게 주시는 자연적 생명에 일용할 양식과 활동적 생명을 완벽하게 받아들이기를 원합니다. 이 못난 작은 이에게도 이처럼 크나큰 은혜를 베풀어 주심으로, 활동적 생명을 모르는 이 피조물 사람에게도 이 과정을 모든 피조물 사람에게 가르쳐줄 의무, 성과를 보여줄 의무가 있습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 와 항상 영원히. 아멘. 몸을 90도로 굽히어 머리를 깊숙이 숙여 하느님께 큰 경배를 드립니다. 눈에 눈물이 약간 고입니다. 눈물샘에 눈물이 거의 말라가는 상태입니다. 성령님 이처럼 눈물 감응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저에게 믿음, 희망, 사랑, 향주 삼덕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주십니다. 그 확고한 믿음이 매일 신앙생활을 하여 더욱더 굳건해집니다. 이 굳건해진 그 성과를 모든 피조물 사람에게 알리겠습니다.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천상의 책 제20권 31장 1926년 11월 29일
종들의 종노릇을 하게 된 왕의 비유. 인간이 매사에 하느님 뜻의 도움을 받을 때.
1. 늘 하듯이 흠숭하올 뜻에 계속 나 자신을 맡기고 있노라니, 모든 조물이 눈앞에 나타나 보였다. 큰 것이든 더없이 작은 것이든 그 모든 조물 안에는 지고하신 뜻이 승리자로 개선하시어 빛과 원초적 생명으로서 다스리고 계셨다. 너무나 큰 매력과 질서, 드문 아름다움과 조화가 그들 가운데에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을 다스리는 뜻이나, 그들 안에 들어가서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그들을 묶는 뜻이나, 하나의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2. 내가 그 광경을 보며 놀라워하고 있었을 때, 다정하신 예수님께서 나의 경탄을 중단시키며 이르셨다. “딸아, 내 뜻은 각 조물 안에 활동적인 생명으로 남아 있었다. 완전한 승리를 거두어 아무 거리낌 없이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내 뜻은 태양의 빛과 열의 활동적 생명을 가지고 있고, 하늘에서는 내 뜻의 무한성의 활동적 생명과 내 뜻이 만든 다양한 작품들의 활동적 생명을 가지고 있고, 바다에서는 내 뜻의 능력과 정의의 활동적 생명을 가지고 있다.
3. 사실, 내 뜻은 피조물의 뜻과 같지 않다. 피조물은 일을 하고 싶어도 손이 없으면 못하고, 걷고 싶어도 발이 없으면 못 걷는다. 또 벙어리이거나 소경이면, 말을 못하거나 아무것도 못 본다. 그 대신 내 뜻은 모든 행위들을 단일 행위로 한다. 이를테면 일을 하면서 걷는다. 또 정신을 집중해서 보는 행위를 하면서 동시에 말하는 것에 온통 주의를 기울인다. 그런데 어찌나 유창한 능변인지 이에 필적할 만한 이는 아무도 없을 정도다.
4. 내 뜻은 또한 요란한 천둥소리로, 번쩍 하는 번갯불로, 휘파람 비슷한 소리를 내는 바람으로, 바다의 드센 파도소리로, 작은 새의 지저귐으로 말한다. 어디서나 말한다. 때로는 강하고 때로는 감미롭고 때로는 천둥소리 같은 내 뜻의 목소리를 모든 이가 듣게 하려는 것이다.
5. ‘내 뜻아, 너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하는구나! 누가 너만큼 피조물을 사랑해 왔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그 점에 있어서는 내 인성마저 너보다 한참 뒤처진다! 나는 네 안에 가려져 있고, 너는 시작도 끝도 없는 네 활동 안에 남아 있다. 너는 언제나 네 자리에 있으면서 모든 조물에게 생명을 준다. 인간에게 너의 생명을 가져다주게 하려는 것이다.
6. 오, 모든 사람이 만약 내 뜻이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며 그들 모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안다면, 또 내 뜻이 생기 넘치는 숨이 어떻게 그 모두에게 생명을 주는지를 안다면, 그들은 정녕 내 뜻을 사랑하며 모두가 거기 내 ‘영원한 피앗’ 둘레에 빽빽하게 모여 있으련마는! 그리하여 그것이 그들에게 주고자 하는 생명을 받게 되련마는!
7. 하지만, 내 딸아, 내 지고한 의지가 모든 조물 안에 남아 다스리면서 그들 각자의 생명으로서 내 뜻 특유의 일을 해 온 까닭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것은 내 뜻이 그 자신에게, 즉, 사람 안에서 생명과 통치권을 가질 내 뜻 자신에게 봉사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 뜻이 사람을 위하여 모든 조물을 창조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8. 내 뜻은 왕궁을 지어 그 안에서 거처하며 나라를 통치하려고 여러 개의 방을 만드는 왕처럼 행동하였다. 왕은 수많은 등불을 달아 어둠이 궁 안에 깃들지 않게 하고, 생수가 솟는 작은 샘구멍들을 파고, 그 자신의 즐거움을 위하여 음악이 흐르게 하고, 쾌적한 정원들이 궁을 에워싸게 한다. 요컨대 왕은 자기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놓아두는데, 이는 그의 왕권에 어울리는 행동이다.
9. 왕인 그에게는 이제 종들과 대신들과 군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들은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왕이 지배자가 되는 대신, 종들과 대신들과 군사가 주권을 잡는다. 그러니 그가 만든 것들이 그에게 봉사하지 않고 부당하게도 그의 종들에게 봉사하는 것을 보면서 왕은 너무나 큰 비통에 빠지지만 어쩔 수 없이 자기 종들의 종으로 처신하게 된다. 그가 만들거나 한 일이 그 자신에게 봉사하면 그를 종이라고 부를 수 없겠지만 말이다.
10. 내 뜻은 원래 사람들 안에 있는 그 자신에게 봉사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내 뜻은 모든 조물 안에 그 자신을 고결한 여왕보다 더 고결한 것으로 남겨 두어, 사람 안에 있는 이 여왕의 왕권에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게 하였다.
11. 사실, 내 뜻 외에는 내 뜻을 합당하게 섬길 수 있는 것이 달리 없었을 것이고, 내 뜻이 종들에 의해 섬김을 받는 것에 익숙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무도 내 뜻 자신의 고결하고도 거룩한 방식으로 내 뜻을 섬길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12.이제 내 지고한 뜻의 크나큰 고통에 대하여 들어 보아라. 내 뜻의 딸인 네가 너의 어머니요 여왕이며 생명인 존재의 고통을 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실상 내 뜻은 창조된 만물 안에서 종들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 인간의 뜻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내 뜻의 다스림을 받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들을 섬기는 것, 그것도 오랜 세기에 걸쳐 그렇게 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
13. 영혼이 자기 뜻을 행하려고 내 뜻에서 물러가면, 그때 그는 내 뜻으로 하여금 만물 안에서 종살이를 하게 한다. 그러니 여왕의 신분에서 추락하여 종노릇을 하고 있는 그의 고통이 얼마나 크겠느냐? 그처럼 모진 고통은 덜어 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14. 그럼에도 내 뜻이 종들을 섬기며 창조된 만물 안에 계속 남아 있는 것은 내 뜻의 자녀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 뜻이 만든 것들이 그 ‘영원의 피앗’의 자녀들에게 봉사하게 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내 뜻으로 하여금 그들의 영혼 안에서 다스리게 할 그 자녀들은 내 뜻이 내 고결한 뜻 자신을 섬기게 할 것이니 말이다.
15. 아! 오로지 이 자녀들만이 그처럼 모질고 오랜 고통을 덜어 주리니, 오랜 세기에 걸친 종살이의 눈물을 닦아 주고, 내 뜻의 왕권을 되돌려 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내 뜻을 알릴 필요가 있다. 내 뜻이 행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째서 내 뜻이 전부이며 모든 선을 내포하고 있는지 알리고, 내 뜻의 끊임없는 고통도 알려야 한다. 이 끊임없는 고통은 사람들이 내 뜻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하지 않는 데서 오는 고통이다.”
16. 그 말씀을 듣고 나자, 내 마음에 지고하신 뜻의 고통이 매우 깊이 파고든 상태가 되었다. 그래선지 모든 조물이 계속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는데, 지극히 슬프게도 각각의 조물마다 그 고결하신 여왕이, 곧 지고하신 뜻이 베일로 가려진 채, 모든 인간의 종노릇을 하고 계신 것이었다.
17. 이를테면, 그 지고하신 뜻은 태양 안에서 종으로 활동하면서 빛과 열을 주는 것으로 인간에게 봉사하시고, 샘물 속에서 종으로 활동하면서 인간의 목마름을 풀어 주려고 그들의 입술에 물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그들에게 봉사하시고, 바닷물 속에서 종으로 활동하면서 인간에게 물고기를 주시고, 땅 속에서 종으로 활동하면서 열매와 갖가지 먹을거리, 꽃들과 다른 많은 것들을 주는 것으로 그들에게 봉사하시는 것이다.
18. 말하자면 나는 지고하신 뜻이 만물 안에서 슬픔의 베일에 가려져 계신 것을 볼 수 있었다. 피조물의 종노릇을 하시는 것은 아무래도 그 품위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지고하신 뜻의 여왕다운 고귀성이 배은망덕하고 비뚤어진 피조물의 종노릇을 하는 셈이기도 하니 그 귀한 신분에 합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19. 타락한 피조물은 지고하신 뜻의 종살이를 이용할 뿐, 이 뜻을 바라보거나 한 번이라도 ‘감사합니다.’ 하거나 그 어떤 보답도 한 적이 없었다. 종들에게는 적으나마 품값을 주는 것이 보통이지만 말이다. 그러니 ‘영원한 피앗’이 겪고 있는 그리도 모질고 오랜 고통에 대하여 내가 이해한 것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20. 그러나 내가 그 고통에 잠겨 있는 동안, 흠숭하올 예수님께서 나의 내면에서 나오시어 나를 껴안으시고, 정이 가득 서린 음성으로 이르셨다. “딸아, 내 지고한 의지가 자기 안에서 다스리기를 거부하는 피조물의 종노릇을 하는 것은 정녕 비통하고도 수치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내 의지는 다스려 주기를 원하는 사람들 안에서 훨씬 더 큰 영광과 행복을 느낀다.
21. 네 안에 있는 나의 의지를 보아라. 너에게 봉사하게 되어 얼마나 행복해하고 있느냐! 그것은 네가 글을 쓰는 동안에도 네 안에 임해 있다. 내 의지에 대하여 알리는 글을 쓰도록 네 손을 잡고 인도하는 것으로 봉사하면서 이를 영예와 행복으로 여기는 것이다.
22. 또한 내 의지 자신의 거룩함을 네 정신 안에 두어, 네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이는 내 지고한 의지에 관한 개념과 용어와 가장 좋은 예(例)를 주려는 것이요, 사람들 가운데에 길을 내어 내 의지의 나라를 세우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의지는 너의 시력을 도와 네가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게 하고, 너의 입을 도와 말씀을 먹여 주고, 너의 심장을 도와 바로 내 의지로 고동치게 한다.
23. 그런즉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느냐! 너에게 봉사하는 것은 내 의지의 행복이다. 왜냐하면 내 의지가 (네 안의) 내 의지에게 봉사하고, 그 자신의 생명을 형성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그 자신에 대한 지식과 그 자신의 거룩함에 봉사하고, 그 자신의 나라를 세우는 데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24. 내 뜻은 또 네가 기도하는 동안에도 네 안에 임해 있으면서 너로 하여금 내 뜻 안을 날아다니게 하고, 내 뜻의 행위를 하게끔 하며, 내 뜻의 재산을 소유하게 하는 것으로 네게 봉사한다. 내 뜻의 그와 같은 봉사 방식에는 영광과 승리와 지배력이 있다. 내 뜻은 따라서 영혼이 이 뜻의 봉사를 모든 일 속에서 완전히 받고자 하지 않을 때에만 괴로움을 느낄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