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송영진 신부님_『‘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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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 작성일2024-06-13 | 조회수115 | 추천수5 | 반대(0) 신고 |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 라고 하는 자는 최고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 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마태 5,20-24).”
1) 앞의 17절에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마태 5,17). ‘율법의 완성’은 ‘율법 실천의 완성’을 뜻합니다. 그리고 율법 실천을 완성한다는 말은, 율법을 완전하게 지킨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살인을 하지 않더라도 형제에게 화를 내거나 형제를 모독하는 일도 십계명 제5계명을 위반하는 일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람을 죽이지 마라.” 라는 계명을 폐지하신 일이 아니라, 그 계명을 완전하게 지키라는, 즉 계명 실천을 완성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살인’은 분명히 ‘큰 죄’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죽이고 싶어 할 정도로 미워하는 것’도 살인만큼이나 ‘큰 죄’ 라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그 미움을 없애는 것까지 해야 계명 실천이 완성됩니다. 만일에 자기 마음속에 있는 분노와 증오심을 감추고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나는 십계명 제5계명을 잘 지킨다.” 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이 바로 ‘율법주의자의 위선’입니다. <마음속에 분노와 증오심을 품고 있는 것도 죄이고, ‘위선’도 죄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사실 그 마음 자체가 죄입니다. ‘죄의 뿌리’가 아니라, 그냥 죄입니다.> 뒤의 6장에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마태 6,4.6.18). ‘숨은 일’이라는 말은, 다른 사람들 모르게 한 일을 뜻하기도 하고, ‘마음속’을 뜻하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동도 보시지만, 우리의 마음속을 먼저 보십니다. 그러니 제대로 회개하려면 우선 먼저 마음속부터 깨끗이 청소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참 행복 선언’에서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5,8). 이 말씀을 반대로 생각하면, 마음이 깨끗하지 않은 사람들은 하느님을 볼 수 없다, 즉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경고 말씀이 됩니다.
2) 20절의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를 바란다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처럼 살지 마라.” 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이라는 말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기준으로 삼아서 그들보다 더 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처럼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들 같은 위선자가 되지 말라는 뜻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거룩하고 경건하고 깨끗한 신앙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속을 꿰뚫어보셨고, 그래서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마태 23,27-28).” 라고 그들을 꾸짖으셨습니다.
3) 23절의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이라는 말씀은, 형제가 나에게 화가 나 있고, 나를 미워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말씀입니다. <내가 형제에게 화를 내는 것도 죄이고, 그 형제가 분노와 증오심을 품게 만드는 것도 죄입니다.> (1) 내가 뭔가 잘못한 일이 있어서 그 형제가 몹시 화가 나 있는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내가 남을 용서하는 일만 생각할 때가 많은데, 살다보면 남에게 ‘용서를 청해야 할’ 일도 생깁니다. 그런 경우에, 형제와 화해하려면 내가 먼저 가서 용서를 청해야 합니다. 그렇게 했는데도 형제가 나를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2) 내가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그 형제가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도 오해를 풀어 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도, 또 화해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도 ‘내가 먼저’ 해야 합니다. 그렇게 노력해도 형제가 화해하기를 거부한다면, 역시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이란, ‘기다려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도 우리가 회개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2베드 3,9).>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라는 말씀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언제나 항상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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