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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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6-14 | 조회수176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마태 5,27-32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한 스님이 거리에서 시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앞으로 얼굴도 몸매도 슈퍼모델 뺨칠 정도로 예쁜 여인이 한 명 지나갔지요. 그러자 스님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저런 미인은 난생 처음 본다. 저 윤기나는 머릿결, 풍만한 가슴, 가는 허리… 정말 죽여주는구만.” 그때 그 옆에 있던 행인이 스님이 하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며 물었습니다. “아니? 도를 닦으시는 스님께서 어찌 그리 여색을 탐하십니까?” 그러자 그 스님은 부끄러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 무슨 섭섭한 말씀을… 단식한다고 메뉴판까지 보지 말라는 법 있소?”
아주 예전에 유행했던 우스갯소리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스님이 음흉한 생각을 품고 여인을 바라보긴 했지만,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으니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써 해탈하는 것을 목표로 수행하는 스님이, ‘욕망을 행동으로 옮기지만 않으면 문제없다’는 태도를 가지고 음흉한 생각하는 것을 은근히 즐긴다면 제대로 수행을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언젠가는 마음 속에 가득 찬 그 욕망을 이겨내지 못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죄를 저지르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간음해서는 안 된다”는 계명을 ‘글자 그대로 지키는 수준’에 머무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간음’이라는 죄의 경계선만 넘지 않으면 그 안에서는 무엇을 해도 괜찮다고 우리를 유혹하는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인간적인 욕구는 한 번 마음 안에 자리를 잡으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 욕구에만 온전히 정신이 팔려 나에게 그보다 더 큰 만족과 기쁨을 가져다 줄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겁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라는 말이 그래서 위험합니다. 우리가 ‘금강산’이라는 참된 아름다움 자체를 추구하지 않고, 그저 무엇으로든 배를 채워야겠다는 욕망에 휘둘리면 내 삶에 참된 의미와 기쁨을 주는 소중한 가치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아무리 채워도 만족되지 않고 점점 더 커지기만 하는 ‘욕망 주머니’ 안에 내가 갇혀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는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내 마음이 감당 못할 욕망에 휘둘리는 슬픈 일이 생기기 전에 죄의 뿌리가 되는 욕망을 그 뿌리부터 단호하게 잘라내야 합니다. 나를 죄짓게 하는 눈을 뽑아버리고 손을 잘라 버리라는 말씀은 그런 뜻입니다. 신체 일부를 물리적으로 잘라버리라는 게 아니라, 눈을 통해 손을 통해 나를 죄 짓게 만드는 나쁜 욕망을 없애 버리라는 뜻인 겁니다. 그럴 수 있는 방법은 ‘기도’입니다. 우리가 나쁜 욕망과 선한 양심 사이에서 고뇌할 때, 사탄은 나쁜 욕망을 선택하라고, 너만 그러는거 아니라고, 다들 그러고 산다고, 그래야 니가 산다고 우리를 부추깁니다. 그리고 그 유혹에 넘어가 욕망을 실행에 옮기면 되돌릴 수 없는 죄를 짓게 되지요. 하지만 하느님의 도우심과 보호를 청하는 기도, 그분 뜻에 순명하고 따르기 위해 노력하는 기도는 그런 사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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