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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송영진 신부님_<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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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6-15 조회수129 추천수1 반대(0) 신고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또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33-37).”

 

 

 

1) 이 말씀은, 십계명 제2계명,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마라.”와 제8계명,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와 관련되는 가르침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두고’, 또는 ‘하느님을 걸고’ 맹세하는 일은,

 

하느님의 허락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느님을 증인으로

 

내세우는 일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는 계명을 위반하는 죄이고, 하느님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또 그 맹세가 거짓 맹세라면

 

십계명 제8계명을 위반하는 죄가 됩니다.

 

여기서 ‘하늘, 땅, 예루살렘, 자기 머리’는 그 당시 사람들이

 

맹세할 때 하느님을 직접 언급하는 것을 피하려고 사용한

 

표현들인데, 그런 것들을 두고 맹세한 것은

 

사실은 하느님을 걸고 맹세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당시의 율법학자들은 하느님을 직접 언급한 것이

 

아니니까 신성 모독이 아니라고 억지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 주장 때문인지, 예수님께서는 아예 맹세를

 

하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맹세를 아예 하지 않으면, 맹세 때문에 하느님을 모독하는

 

죄를 짓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2) 신약성경 히브리서를 보면 ‘맹세’에 관한 말이 나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당신보다 높은

 

분이 없어 그러한 분을 두고 맹세하실 수 없었으므로,

 

당신 자신을 두고 맹세하시면서, ‘정녕코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너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히브 6,13-14).”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상속받을 이들에게

 

당신의 뜻이 변하지 않음을 더욱 분명히 보여 주시려고,

 

맹세로 보장해 주셨습니다(히브 6,17).”

 

여기에 인용되어 있는 말씀은 창세기 22장 17절입니다.

 

창세기에서 그 부분을 보면, 하느님의 말씀이 “나는 나

 

자신을 걸고 맹세한다.”로 시작되고 있습니다(창세 22,16).

 

<하느님께서는 왜 굳이 ‘맹세’의 형식을 사용하셨을까?

 

그것은 아마도, ‘맹세’의 방식에 길들여져 있는

 

아브라함에 대한 배려일 것입니다.>

 

그처럼 하느님도 ‘맹세’를 사용하셨으니, 예수님께서 아예

 

맹세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맹세’ 자체가 악한 일이기

 

때문인 것은 아닌 것이고, 악한 의도로 맹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해석됩니다.

 

<그래서 예수님 말씀은 ‘명령’이 아니라 ‘권고’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편지를 보면,

 

‘맹세’의 형식을 사용한 경우가 보입니다.

 

“하느님의 성실하심을 걸고 말하는데......(2코린 1,18).”

 

“나는 목숨을 걸고 하느님을 증인으로 불러

 

말합니다. ......(2코린 1,23).”

 

‘하느님의 성실하심을 걸고 말한다.’ 라는 말과 ‘나는 목숨을

 

걸고 하느님을 증인으로 불러 말한다.’ 라는 말을 겉으로만

 

보면, “아예 맹세하지 마라.” 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바오로 사도가 정면으로 거스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의 말은 “내 말이 거짓이면 천벌을

 

받아도 좋다.” 같은 세상 사람들의 맹세와는 다른 것이고,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정도로 해석됩니다.

 

 

 

3)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라고만 하여라.” 라는 말씀은,

 

오직 진실만을 말하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에서, ‘예’는 ‘선’을 뜻하고,

 

‘아니요.’는 ‘선’이 아닌 것, 즉 ‘악’을 뜻합니다.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라는 말씀은,

 

‘선’을 왜곡하거나 변질시키고, ‘악’을 ‘악’이 아닌 것처럼

 

꾸미는 인간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선’을 ‘선’이라 하고, ‘악’을 ‘악’이라 하는 것은

 

진실을 진실 그대로 말하는 것이고, 그 자체로 선한 일입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실제 인간 세상의

 

현실을 보면,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악한 일을 하면서도 “지금 내가 하는 일은 선한 일이다.”

 

라고 착각하고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에, 바오로 사도를 죽이고 싶어 했던 자들이,

 

자기들은 옳은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하느님을 두고 맹세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에서 마흔 명이 넘는 사람이 바오로를

 

치려고 매복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오로를

 

없애 버리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하느님을 두고 맹세하였습니다(사도 23,21).”

 

그들이 하느님을 두고 한 맹세를 지켰다면

 

굶어죽었어야 하는데,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진심으로 바오로 사도를 죽이고 싶어서

 

그런 맹세를 했을 텐데, 즉 거짓 맹세를 한 것은 아닐 텐데,

 

바오로 사도를 죽이려고 하는 일도, 그것 때문에 하느님을

 

두고 맹세한 일도, 맹세를 지키지 않은 일도 모두

 

악한 일이라는 것을, 그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악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상태에서 자기 마음대로 하느님을 두고

 

맹세하면, 신성 모독죄가 추가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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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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