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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전에 ‘광야’가 존재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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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백봉7 쪽지 캡슐 작성일2024-06-16 조회수22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24년 나해 연중 제11주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전에 ‘광야’가 존재하는 이유>

 

 

 

복음: 마르코 4,26-34

 

 

 


LORENZETTI, Pietro 작, (1325)  

    

 

    도입: 하느님 나라는 왜 한 번에 오지 않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이 지옥과 같은 이집트를 탈출하였을 때 바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왜 꼭 광야라는 시험의 장소를 거치게 하셨을까요? 어쩌면 오늘 복음이 그 해답을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 나라는 두 비유가 하나의 짝으로 설명됩니다. 하나는 ‘하느님 나라는 땅에 뿌린 씨가 뿌린 자신도 모르게 자라서 열매를 맺기까지에 이른다.’라는 내용입니다. 두 번째 비유는 하늘나라는 겨자씨와 같다고 하십니다. 결국 하느님 나라가 그 안에 이루어지면 그 사람은 ‘많은 새들이 깃들여 쉴 수 있는 휴식 같은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을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는 구약성경 구절이 오늘 독서의 에제키엘서(17,22-24)입니다. 하느님은 손수 향백나무의 가장 연한 가지 하나를 꺾어 높고 우뚝한 산 위에 심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햇가지가 나고 열매를 맺으며 훌륭한 향백나무가 됩니다. 그 열매란 이것입니다. 

    “온갖 새들이 그 아래 깃들이고 온갖 날짐승이 그 가지 그늘에 깃들이리라.”(에제 17,23)

 

 

    만약 하늘 나라가 우리 노력으로 이뤄진다면 어떨까요? 인간은 교만해질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이뤄져야 더 감사할 줄 압니다. 아기가 모든 이치를 깨달아서 자기 노력으로 두 발로 걷고 지식을 습득하여 사회생활이 가능해진다면 그만큼 부모에게 덜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바로 행복하게 하시지 않고 광야의 시간을 주시는 이유는 또한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갑자기 행복해지면 행복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영화 ‘행복을 찾아서’는 아들과 함께 노숙자로 살다가 백만장자로 자수성가한 크리스 가드너의 실화를 담고 있습니다. 그는 가난한 가정에서 홀어머니에게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자녀들을 버리고 도망가버려서 어머니 혼자 크리스를 키워야 했습니다. 그래도 크리스는 희망을 잃지 않았고 화장실에서 자면서도 결국 투자관리자로 큰 회사에 들어가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그렇게 힘들게 살았고 위로 올라오는 게 얼마나 힘든지를 잘 압니다. 그래서 그렇게 얻은 행복의 가치를 아는 것입니다. 

 

 

    16세 때 교통사고로 두 팔을 잃은 슈레아 시나다가우더의 사연은 큰 감동을 줍니다. 그는 다행히도 크고 털이 많은 검은 남자의 두 팔을 기증받았습니다. 그런데 수술이 끝나자 그 팔이 여성의 팔로 변해갔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저 스스로 매우 축복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쁩니다.”

 

    만약 그녀가 처음부터 팔을 잃지 않았다면 팔에 대한 감사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영화 ‘베테랑’을 생각해봅시다. 태어날 때부터 부자였던 재벌 3세 조태호는 자신이 누리는 재산의 가치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고 더 많은 돈과 권력이 있어야만 만족합니다. 미국의 어떤 재벌들은 돈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습니다. 노력해서 성공하는 행복의 기회를 빼앗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없었던 적이 없다면 그 고통을 알지 못하기에 연민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화에서 조태호는 가난한 자의 고통 앞에서 “어이가 없네!”라고 말합니다. ‘상처받은 치유자’란 말이 있습니다. 내가 고통을 알아야 진정으로 상대의 고통을 통감할 수 있고 구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렇게 ‘휴식 같은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넬슨 만델라는 어떻게 27년을 감옥에서 버틸 수 있었느냐고 할 때, “나는 버틴 게 아닙니다.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믿고 포기하지 말라고 연설했던 덴젤 워싱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하늘 나라를 믿었습니다. 즈카르야는 천사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성모님은 성취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버티다가 엘리사벳을 통해 참 행복을 맛봅니다. 

 

 

    저는 연옥에 안 가는 기도를 압니다. 비르짓다의 ‘일곱 번의 주님의 기도’를 12년 동안 바치면 됩니다. 처음 바칠 땐 저도 긴가민가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행복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12년 동안 바치고 난 뒤에 느끼는 하늘 나라의 기쁨이 무엇인지 모르면 알려줄 수 없습니다. 

    즈카르야는 벙어리가 되면서 천사에게 이런 말을 듣습니다.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루카 1,20)

    먼저 믿고 버티는 광야를 거치지 못하면 행복을 알 수도 없고 행복을 전해줄 수도 없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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