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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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조재형 | 작성일2024-06-17 | 조회수280 | 추천수5 | 반대(0) |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전서 3장 16절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여기서 ‘하느님의 성전’이란 무슨 의미일까요? 하느님의 유품을 보관한 박물관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을 뜻하는 것도 아닙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살아있는 하느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나의 말과 행동이 살아계신 하느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나에게서 하느님의 거룩함이 보이는 것입니다. 나에게서 하느님의 자비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나에게서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가 복음을 전하던 코린토 지역에는 우상숭배가 많았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신앙인에게 ‘하느님의 성전’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야 우상숭배하는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사람이 신앙인을 보고 하느님께 돌아올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에덴동산’이라고 부르는데, 에덴동산은 어떤 의미일까요? 하느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을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동산이라고 표현하는데 영어 성경에는 ‘에덴가든’이라고 합니다. 동산과 가든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동산은 울타리가 없습니다. 가든은 울타리가 있습니다. 개신교인들이 천주교회로 간다며 개신교 목회자들이 걱정한다고 합니다. 목회자들은 그 원인으로 개신교회의 울타리가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울타리가 무너지면서 목회자들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식었다고 합니다. 울타리가 무너져서 선교가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울타리가 무너져서 신앙이 뜨거워지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오히려 울타리가 견고해야 세상 사람들이 그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지었던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불 칼로 울타리를 쳤다고 합니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합니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세상의 것을 버려야 합니다. 사제성소가 줄고 수도자성소도 줄고 있습니다. 주일미사 참례도 현저히 줄고 있습니다. 박해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팬데믹 때문도 아닙니다. 사제들이 울타리를 치웠기 때문입니다. 사제복을 벗고, 기도 시간을 줄였기 때문입니다. 수도자들이 울타리를 치웠기 때문입니다. 수도복을 벗고 순명의 울타리를 치웠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이 의무와 직분의 울타리를 치웠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울타리를 치웠기 때문입니다. 성직자들이, 수도자들이, 신앙인들이 울타리를 세우고 믿음의 횃불을 높이 든다면, 사제성소도 수도자성소도 늘어날 것입니다. 아합왕은 잘못했지만, 회개의 울타리를 만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합왕을 벌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서 하느님과 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회개의 울타리를 치웠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스스로 울타리를 치우곤 했습니다. 기도의 울타리, 나눔의 울타리, 섬김의 울타리를 치웠습니다. 울타리를 치워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울타리를 치워서 영적으로 메마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울타리를 세우라고 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울타리를 세우는 것입니다. 박해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울타리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웃을 위해서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울타리를 세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너지지 않는 울타리를 말씀하십니다. 그 울타리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울타리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자유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거룩하게 되는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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