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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영근 신부님_2024년 6월 17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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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원석 쪽지 캡슐 작성일2024-06-17 조회수189 추천수3 반대(0) 신고

제1독서

▥ 열왕기 상권의 말씀 21,1ㄴ-16 

 

그때에

1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이즈르엘에 포도밭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포도밭은 사마리아 임금 아합의 궁 곁에 있었다.
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포도밭을 나에게 넘겨주게.
그 포도밭이 나의 궁전 곁에 있으니, 그것을 내 정원으로 삼았으면 하네.
그 대신 그대에게는 더 좋은 포도밭을 주지.
그대가 원한다면 그 값을 돈으로 셈하여 줄 수도 있네.”
3 그러자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는 제가 제 조상들에게서 받은 상속 재산을 임금님께 넘겨 드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4 아합은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자기에게, “제 조상님들의 상속 재산을 넘겨 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한 말에 속이 상하고 화가 나서 궁전으로 돌아갔다.
아합은 자리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음식을 들려고도 하지 않았다.
5 그의 아내 이제벨이 들어와서 물었다.
“무슨 일로 그렇게 속이 상하시어 음식조차 들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6 임금이 아내에게 말하였다.

“실은 내가 이즈르엘 사람 나봇에게 ‘그대의 포도밭을 돈을 받고 주게. 원한다면 그 포도밭 대신 다른 포도밭을 줄 수도 있네.’ 하였소.
그런데 그자가 ‘저는 포도밭을 임금님께 넘겨 드릴 수 없습니다.’ 하고 거절하는 것이오.”
7 그러자 그의 아내 이제벨이 그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에 왕권을 행사하시는 분은 바로 당신이십니다.
일어나 음식을 드시고 마음을 편히 가지십시오.
제가 이즈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밭을 당신께 넘겨 드리겠습니다.”
8 그 여자는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그의 인장으로 봉인하고, 그 편지를 나봇이 사는 성읍의 원로들과 귀족들에게 보냈다.
9 이제벨은 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단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의 첫자리에 앉히시오.
10 그런 다음, 불량배 두 사람을 그 맞은쪽에 앉히고 나봇에게, ‘너는 하느님과 임금님을 저주하였다.’ 하며 그를 고발하게 하시오.
그러고 나서 그를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이시오.”
11 그 성읍 사람들, 곧 나봇이 사는 성읍의 원로들과 귀족들은 이제벨이 보낸 전갈 그대로, 그 여자가 편지에 써 보낸 그대로 하였다.
12 그들이 단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의 첫자리에 앉히자,
13 불량배 두 사람이 들어와서 그 맞은쪽에 앉았다.
불량배들은 나봇을 두고 백성에게, “나봇은 하느님과 임금님을 저주하였습니다.” 하고 말하며 그를 고발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나봇을 성 밖으로 끌어내어 돌을 던져 죽인 다음,
14 이제벨에게 사람을 보내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하고 전하였다.
15 이제벨은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합 임금에게 말하였다.
“일어나셔서, 이즈르엘 사람 나봇이 돈을 받고 넘겨주기를 거절하던 그 포도밭을 차지하십시오. 

나봇은 살아 있지 않습니다. 

죽었습니다.”
16 나봇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아합은 일어나, 이즈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밭을 차지하려고 그곳으로 내려갔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5,38-4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늘 복음은 다섯 번째의 ‘새로운 의로움’에 대한 말씀입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구약의 복수동태법의 율법에 대하여, ‘새로운 의로움’을 제시하십니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마태 5,39)

이는 ‘악인에게 무관심하라’, ‘악인을 피하라’, ‘악인에게 대처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곧 악에 대한 무저항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는 단지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말씀도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도피요, 자기 기만이요, 비겁한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여기서 '맞서다'는 말의 원어의 뜻은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든,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응수이든, 일일이 ‘맞대응’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니 ‘맞서지 말라’기보다 ‘맞대응하지 말라’는 의미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곧 ‘똑같은 방식으로 맞대응하지 말라’, ‘폭력으로 맞대응하지 말라’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사실 악과 ‘맞대응’ 하다보면, 자신도 악에 물들어 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렇지만 피한다고 해서 치유되거나 보복심이 사라지거나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억울하고 원망이 깊어지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악을 진정한 방법으로 맞서는 일, 곧 하느님의 방식으로 맞서 대응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악을 진정으로 맞서는 그 방법을 가르쳐주십니다. 

그것은 악을 도피하거나 벗어나는 길이 아니라, ‘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입니다. 

악을 악으로 맞서는 것은 악을 이기는 방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불을 불로 끌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불은 불이 아니라 물로 꺼야 하듯, 악을 이기는 현명한 방법은 오히려 선을 행하는 일입니다.

 

사실 ‘오른 뺨을 치거든 다른 뺨을 돌려 대는’(마태 5,39) 일은 자신 안에 도사리고 있는 복수심을 몰아내는 일이 됩니다.

자신을 지키는 것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고 선을 행하는 것이 진정 이기게 되는 길입니다.

 

‘사랑’이 악을 이기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진정한 자유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에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이는 악이나 악인에게 맞서기보다, 악 가운데서도 주님을 찾으라는 말씀입니다. 

주님께 신뢰를 두고 의탁하라는 말씀이요, 악을 오히려 선의 통로로 대처하라는 말씀입니다. 

 

단지 비폭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비폭력에 사랑을 담으라’는 말씀입니다.

곧 ‘사랑’으로 대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는 말씀하십니다.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마태 5,40-42)

 

<오늘의 말·샘 기도>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마태 5,39)

주님!

맞서지 않게 하소서!

대적하거나 앙갚음하지 않게 하소서.

한쪽 뺨을 치면, 다른 쪽 뺌을 돌려 대게 하소서.

당신께서는 처벌할 권한이 아니라 사랑할 권한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고 선을 행하는 것이 이기는 길인 까닭입니다.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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