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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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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4-06-17 조회수278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마태 5,38-42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사람은 보통 자기가 받은 피해나 상처에 대해 누군가에게 앙갚음 할 때, 받은 것 이상으로 되돌려줘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리고 그런 복수 행위가 민족이나 국가처럼 큰 집단의 차원에서 행해지면, 폭력이 극단으로 치달아 상대방의 목숨까지 빼앗는 ‘전쟁’이 되고 말지요. 그렇기에 모두가 폭력으로 인해 공멸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런 마구잡이식 복수를 방지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객관적이고 공정한 정의를 실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함무라비’ 법전입니다. 그 중에서도 ‘동태 복수법’이라 불리는 탈리온 법이 아주 유명한데, 다른 이에게 피해를 입힌 이를 벌할 때 ‘목숨은 목숨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상처는 상처로, 타박상은 타박상으로 갚으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죄보다 가벼운 벌을 내리면 억울함이 생기고, 죄보다 무거운 벌을 내리면 복수심이 싹트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원래의 법 정신을 잊어버리고는, 정해진 선만 넘지 않으면 사적으로 복수를 해도 된다는 식으로 오해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회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복수의 법’을 ‘사랑의 법’으로 바꾸고자 하십니다. 누군가 잘못된 말과 행동으로 나에게 피해와 상처를 입히더라도, 그 ‘악인에게 맞서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악에 저항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랬다가는 이 세상이 하느님 뜻을 거스르는 악인들로 가득한 ‘지옥’이 되고 말겠지요. 여기서 ‘맞서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의 원래 뜻은 그것이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행동이든 아니면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절차이든 “일일히 맞대응한다”는 의미입니다. 곧 상대방이 나에게 저지른 것과 똑같은 잘못된 방식으로, 부정과 불의 폭력과 거짓으로 맞대응하지 말라는 뜻인 겁니다.

 

먹을 손에 쥐고 있으면 손가락에 먹물이 들듯이, ‘악’을 복수의 도구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나 자신도 악에 물들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악에 맞서되 올바른 방식으로, 즉 하느님의 방식으로 맞서야 합니다. 하느님의 방식은 악에 악으로 ‘맞불’을 놓는게 아니라, 악을 그보다 더 큰 사랑으로 덮음으로써 그 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불을 불로 끄려고 하면 막대한 피해가 생길 뿐만 아니라 자칫 잘못하면 그 불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커질 수 있으니 반드시 물로 꺼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으면 복수라는 부메랑을 타고 더 큰 악을 되돌아옵니다. 그러니 악을 이기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더 큰 사랑과 자비, 선으로 그 악이 초래한 분노의 불꽃을 완전히 꺼버리는 것 뿐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정의는 사람들이 말하는 복수의 정의와는 다릅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을 향한 비난과 모욕, 미움과 박해에 대해 분노와 심판의 불꽃으로 단죄하시는 대신, 용서와 자비, 사랑과 희생으로 감싸안는 쪽을 택하셨습니다. 그런 주님의 사랑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가톨릭 교회의 상징인 ‘십자고상’이지요.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매달려 계신 십자가를 바라보며 중요한 구원의 진리를 마음에 새겨야겠습니다. 상처를 상처로 갚으려고 들면 내 상처만 더 크게 덧날 뿐입니다. 상처에는 사랑이라는 밴드를 붙여야 그 안에서 치유와 화해라는 새 살이 돋아납니다.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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