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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마태오 6, 1 - 6.16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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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기승 쪽지 캡슐 작성일2024-06-18 조회수155 추천수2 반대(0) 신고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6,4.6.17)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5,16)하고 예수님은 당부하셨습니다. 착한 행실, 선행의 근본적인 동기는 바로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며 그로써 우리 역시 존재적인 보람과 기쁨을 맛볼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인간의 칭찬이나 인정에 연연하기보다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 앞에 행하는 게 올바른 선행의 동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지 않고 우리의 선행동기가 사람의 인정이나 칭찬에 치우치다 보면 자칫 의도적이며 선심적인 행위로 전락할 위험성이 없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은 착한 행실의 3가지 실천을 예로 들었습니다. 자선을 베풀고, 기도하고, 단식하는 것은 율법의 속죄 행위이기도 하겠지만, 더 나아가서 특별한 공로를 쌓는 행위이기도 했습니다. 자선은 무엇입니까? 인간은 본디 하느님으로부터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먼저 받았기에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예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곧 모든 것은 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받은 것을 베풀 때 그 비워진 영적 곳간에 주님께서 가득 채워 주실 것입니다. 베풂은 남는 것을 주는 게 아니라 받은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일방적인 베풂은 세상에 없습니다. 베풂은 때론 되돌려 받기 마련인데 그것은 나의 베풂을 받는 그 사람에게서 우리는 기쁨을, 행복을 선물로 되돌려 받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서로 주고받은 존재들이고 이런 자선은 곧 참된 형제애의 모습이라고 봅니다. 자선을 베풀 때 자존심을 빼앗지 않도록 늘 조심합시다. 

기도를 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 앞에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하느님을 만남으로써 우리가 누구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하느님 앞에서 누구인가를 깨달을 때, 우리의 기도는 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와 찬미, 찬양과 영광 그리고 그분 앞에서 나답지 않게 살지 못했음을 깨닫고 참회와 용서의 기도를 바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절박한 자기 한계를 인식하고 자비하신 하느님께 삶의 필요한 은혜를 청하고 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응답의 종류보다 참된 기도는 주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에 있기에 이 점을 늘 명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단식은 단지 좋아하는 음식이나 음료 그리고 담배 등의 기호품을 먹지 않고 마시지 않고 줄이는 게 아닙니다. 물론 이런 노력도 하느님 보시기에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더 좋아하시는 단식은 이사야가 선포한 것처럼,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입니다.”(이58,6) 참된 단식은 음식이나 그 무엇으로 채우려는 신체적이고 정신적이며 영적 탐욕을 버리고 비워서 그 비운 그 자리에 하느님의 것, 영적인 것으로 채우는 것이 진정한 단식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이런 선행보다 더 중요한 오늘의 가르침의 방점은 이 모든 것을 행할 때, “숨은 일도 보시는 네 하느님 앞에서”(6,4.6.18) 행하는 데 있습니다.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 앞에서 행하는 이런 선행은 비록 사람들의 인정이나 칭찬받지 못하겠지만 하느님께서 분명 30배, 60배 아니 100배로 그 상급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위선자들처럼, “남들이 보는 앞에서 칭찬을 받으려는 행동,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는 행동, 침통한 표정으로”(6,2.5.16) 하는 선행은 ‘하느님의 영광 보다 자신의 영광’을 위한 이기심과 허영심에서 기인하기에 하느님이나 사람들 눈에 역겨운 행동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선행보다 그 선행의 동기이며 마음 자세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주님께 희망을 두는 모든 이들아, 마음을 굳게 가져라.” (시31,25)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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