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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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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24-06-19 조회수173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마태 6,1-6.16-18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공부는 왜 하는 것일까요? 단순히 남들보다 좋은 성적을 받아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서, 그리고 그렇게 얻은 ‘학벌’을 바탕으로 안정되고 연봉도 많이 받는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해서일까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공부를 한다면 공부가 주는 여러 유익함 중 그저 일부를, 시한부로 누릴 뿐입니다. 원하던 작은 것을 얻고 난 뒤에는 공부처럼 힘든건 안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폭넓은 지식, 대상의 근원과 본질을 꿰뚫는 깊은 지혜를 바탕으로 인생을 의미있고 보람차게 살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즉 공부는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인정받기 위해 하는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시끄러운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가 아니라 ‘뿌리 깊은 나무’가 되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이런 공부의 본질보다 남들의 시선을 더 신경쓴다면, 참된 지식과 지혜를 얻으려 하기보다 그저 사람이 많은 곳만 찾아 다니게 될 겁니다.

그런 점은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은 다른 이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나의 거룩함과 의로움을 내세워 자랑하기 위해 하는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를 올바르게 식별하고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 그리고 그 안에서 삶의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리기 위해 하는게 신앙생활인 겁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언급하시는 대표적 신심행위 즉 자선, 기도, 단식도 그러기 위해서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유다인들, 특히 종교 지도자들은 그런 신심행위들 자체에서 의미와 기쁨을 찾기 보다는 특별한 보상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행위들을 통해 자신의 거룩함을 드러내고 의로움을 과시하며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받고자 한겁니다. 그럴수록 자신이 세상에서 누리는 기득권이 더 커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그런 그들의 잘못된 행태를 지적하십니다.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과시하거나 생색내는 일, 남의 인정과 칭찬을 바라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깊이 헤아리고 충실하게 따르며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아가면, 하느님께서 그런 나의 진정성과 노력을 알아봐주시고 갚아주신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의로움’의 본질은 나의 거룩함과 올바름을 겉으로 드러내 과시하는게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따름으로써 그분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나 결과에 휘둘리지 않고 마음과 의도를 꿰뚫어 보시는 분이기에, 겉으로만 그런 ‘척’ 위선을 떨어서는 그분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는 기도를 하든, 자선을 베풀든, 단식을 하든 그 자체에 집중하며 그 안에서 기쁨과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들이 주는 유익함을 온전히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게 함으로써 내 고집과 교만으로 인해 틀어진 그분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합니다. 자선은 우리라는 관점으로 나를 바라보게 함으로써 내 욕심과 집착으로 인해 틀어진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합니다. 단식은 감사라는 관점으로 나를 바라보게 함으로써 내가 누리는걸 당연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인해 망가진 행복을 회복하게 합니다. 그러니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이 모든 노력을 헛수고로 만들지 말고 하느님만 바라보며 온전히 집중해야겠습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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