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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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6-20 | 조회수171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연중 제11주간 목요일] 마태 6,7-15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기도는 누구 들으라고 하는 것일까요? 기도는 하느님 들으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지요. 그런데 기도를 다른 사람 들으라고 바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온갖 화려한 미사여구를 동원해가며 본인의 신심과 거룩함을 드러내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는사이 말은 점점 장황해지고 길어지지요. 그런데 정작 그 기도에서 하느님은 빠져 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도, 그분께 대한 의탁이나 순명도 없이, ‘이러이러한 일을 할 거고 잘 하고싶다’는 식의, 일종의 ‘업무보고’처럼 되어 버리는 겁니다. 기도의 본질과 목적에서 완전히 벗어나 길을 잃고 헤매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에는 하느님만 생각해야 합니다. 그분의 마음과 뜻을 헤아리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면 굳이 구구절절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오히려 듣는 데에 집중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알려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나에 대해 가장 잘 아시기에 내가 삶의 참된 기쁨과 행복을 누리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도 다 아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장 적당한 타이밍에 주시기 위해 ‘때’를 기다리시는 그분이십니다. 이것을 안다면 자신이 바라는걸 이뤄달라고 하느님께 떼를 쓰거나, 자기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는다고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저에게 무엇이 가장 필요하고 좋은지는 하느님 당신께서 가장 잘 알고 계시니, 당신께서 원하시는 때에, 당신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주십시오. 그리고 당신께서 무엇을 주고자 하시는지를 제가 제대로 알아보고 그것을 온전히 받을 수 있도록 제 마음과 눈을 열어주십시오’라고 담백하고 단순명확한 기도를 바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하느님께 청하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며 동시에 가장 좋은 것들입니다. 우리 각자의 욕망이 실현되는 것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뜻이 실현되는 것이 우리에게 더 좋습니다. 욕망은 채우려 하면 할수록 우리를 더 깊은 갈망에 빠뜨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욕심내고 원하는대로 가지는 것보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꼭 필요한 만큼만 가지는게 더 좋습니다. 내가 바라는대로 다 채워지면 굳이 하느님을 찾지 않으려고 들 것이고 그러다보면 그분과의 관계가 멀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에서 ‘유혹거리’가 사라지는 것보다 그 유혹을 이겨낼 힘을 주시는 쪽이 더 좋습니다. 욕망을 참고 조절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 믿음이 깊어지고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바치는 것입니다. 그 믿음 없이 기도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두려움과 불안함에 빠져 하느님께 떼를 쓰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으면, 기도의 결과를 온전히 하느님께 맡겨드릴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되지 않더라도 그 또한 하느님의 사랑임을 알기에 기꺼이 받아들이고 따를 수 있습니다. 기도는 그러기 위해 바치는 것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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