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 | |||
---|---|---|---|---|
이전글 | 이전 글이 없습니다. | |||
다음글 |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 | |||
작성자박영희 | 작성일2024-06-21 | 조회수160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연중 제11주간 금요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 마태 6,19-23 “하늘에 보물을 쌓아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땅’에 대한 집착이 심한 편입니다. 주변국들로부터 자주 침략당하며 땅을 빼앗기곤 했던 아픈 역사 때문입니다. 땅이 삶을 지탱하는 든든한 기반이자 귀한 재산으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구 수에 비해 가질 수 있는 땅이 너무나 작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땅땅거리는’ 이들이 많습니다. 부동산을 많이 소유한 이들은 ‘떵떵거리며’ 잘 삽니다. 그런 점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에게 땅은 하느님께서 자기 조상들에게 주신 귀한 ‘선물’이요, 그 후손대대로 물려져 내려오는 소중한 ‘유산’이었습니다. 한 곳에 오래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생활을 오래 한 그들이었기에, 광야라는 척박한 공간에서 사십 년 동안 갖은 고생을 한 그들이었기에, 그들에게 땅은 하느님께서 자기 민족들을 위해 세우신 뜻과 계획이 실현되는 그분 사랑의 표징이었기에 그 땅을 소중히 여기며 집착하게 된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그처럼 ‘땅땅거리며’ 살던 그들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십니다. 땅만 쳐다보면서 살면 그 땅에 매인 존재가 되어 좀과 녹이 쓸고 먼지처럼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떵떵거리며’ 제대로 살려면, 하느님께로부터 진정으로 사랑받는다는 확신과 자부심 속에서 기쁘고 행복하게 살려면 땅 말고 ‘하늘’을 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계시는 그곳,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특별히 마련해주신 그 자리를 바라보며 살라고 하십니다. 하늘을 보며 산다는 것은 내 마음을, 내 삶의 궁극적인 목표와 희망을 하느님 나라에 두는 것입니다. 나의 보물을, 내가 진정으로 아끼며 귀하게 여기는 것들을 하느님과 그분 뜻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내어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그런 나를 어여삐 보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그분께 내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보물’이 됩니다. 그러면 ‘하느님 나라’에서 살게 될 영원의 시간을 충만한 기쁨 속에서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 하늘나라의 주인이신 분께서 나를 ‘첫째’로 여겨주시니, 하느님 덕분에 ‘떵떵거리며’ 잘 살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자신이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땅에서 욕망을 채우는데에 다 써버리지 말고 하늘에 쌓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물에 집착하는 마음을 끊어내야 하지요. 우리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 손바닥만으로도 하늘을 충분히 가릴 수 있습니다. 손바닥을 눈 앞에 바짝 대면 온통 그 손바닥만 보이기에 하늘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겁니다. 재물도 마찬가지지요. 재물에 집착하는 마음이 클수록, 그것만이 내 유일한 보물이라고 여길수록 점점 더 재물에 가까이 다가갈 것이고, 그러면 내 눈에 그 재물이 가득차서 다른 것들은 보이지 않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아무리 좋은 것들을 주시려고 해도 볼 수가 없으니 제대로 받을 수도 누릴 수도 없습니다. 재물의 그림자에 마음이 가려져 주님께서 비춰주시는 구원의 빛, 진리의 빛을 보지 못하고 죄의 어둠 속에서 깊은 슬픔과 절망에 빠져 불행하게 살게 됩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뜻인 사랑과 자비를 적극적으로 실천하여 내 눈을 가린 재물을 치워버리고 하느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